키에르케고르는 “만일 사람이 본능만 가지고 살아가는 동물이었다면 불안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에 시달리며 산다. 인간은 불안이라는 열차를 타고 절망이라는 터널을 지나서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는 존재”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밀려오는 문제들로 인해 불안과 씨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치솟는 물가로 인한 경제적 불안과, 조류독감과 미국 쇠고기 수입에 의한 먹거리에 대한 불안,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늘 불안을 느끼며 삽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의 심리는 특정한 사람이나 특수한 환경에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언제나, 누구에게나 따라 다니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현상이요 정신적인 실상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불안으로 인해 정신적겱?岵막?약화되고 신체적으로도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시31:9)”

그런데 문제는 현대인들이 불안과 맞서 싸워 보려는 마음보다 불안을 피해가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동원한다는데 있습니다. 감각적 오락이나 퇴폐적인 유흥의 수단을 이용해서 불안을 달래보기도 하고 사회적 폭력이나 마약이나 약물을 통해 불안을 잠시 동안 잊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도 원치 않는 불안, 하지만 우리들의 일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불안이라면 이제 우리는 불안의 파도를 극복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이는 마치 바람이 불면 풍차가 돌고 돛단배가 더 잘 나가듯이 바람과 같은 불안을 이용해서 더 빨리 달리게 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은 피조된 존재이므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만이 온갖 불안을 이겨내게 해준다. 인간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쉬게 될 때 까지는 평안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편 42:11을 통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안은 오히려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지금 무엇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습니까?
그 불안을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기회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겼던 문제들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우리 하나님은 나의 짐을 져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를 도와주시는 정말 좋으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이 한 주간 모든 불안을 주님께 다 맡기고 전날의 불안이 찬송으로 바뀌어지는 복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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