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소천 김상원 전 부총회장
국내 첫 일조권 인정 등 소신 판결
재소자 돕기 ‘교정 선교’도 활발히
서울신대 이사 등 교단에도 공헌

자랑스러운 성결인 고 김상원 장로(장충단교회, 전 부총회장)가 지난 2월 24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가운데 생전 그의 올곧았던 양심과 정의로운 실천, 그리고 하나님 앞에 늘 엎드려 지혜를 구했던 신실한 신앙이 재조명되고 있다. 

타인의 인생을 결정짓는 법조인이라는 고인의 삶은 세상이 허락한 화려한 권위의 뒤편에서 늘상 고뇌하고, 각성해야 하는 연단의 연속이었다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최종 대법관에 오르기까지 수천번을 내리쳤을 ‘법봉’이지만, 그가 매 ‘선고’의 순간마다 결코 긴장을 놓지 못했던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짓는 자신의 역할이 세상 누구보다 겸손해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후배 법조인들의 존경과 칭송을 한 몸에 받는 인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젊은 시절 만난 하나님이 결정적이었다. 서울고법 판사를 지내던 때처음 장충동교회를 출석했던 그는 이후 신실한 신앙과 모범적인 섬김을 인정받아 32세의 젊은 나이에 장로에 오른다. 

그에게 있어 신앙은 법조인으로서의 올곧은 공의를 행할 수 있는 삶의 구심점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결코 기울지 않는 저울추를 양손에 얹은 채,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예민한 사건들을 소화하면서도 매순간 신념을 포기치 않았던 배경에는 신앙과 양심이 깊이 새겨진 정직한 가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국내 최초로 ‘일조권’을 인정하고, 유명백화점들의 변칙 세일 사기 사건의 주심을 맡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를 선고했던 올곧은 신념은 법조인으로서의 가장 큰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성결인으로서의 삶도 너무나 모범적이었다. 법조계에 몸 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만든 ‘애중회’라는 기독법조인회 회장으로서, 기독교세진회 이사장으로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 윤락여성보호소 등에서 재소자와 재소자 가족을 돌보는 교정선교를 활발하게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재)일가재단 이사장으로 고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 농군학교의 정신과 철학을 세계화시키는 일에도 헌신했다. (사)내셔널리스트 이사장으로 자연생태계 보호와 문화환경 보존에도 앞장섰다.

또한 운화학원 이사장으로 아동교육과 복지 활동뿐만 아니라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운동에 참여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정직, 순결, 사랑을 전하는 실천 운동도 전개했다. 특히 교회 내의 갈등과 분쟁을 사회 법정 소송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적인 화해로 이끌어 주기 위한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을 설립함으로써 성경적으로 다양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교단 활동 역시 매우 활발했다. 법률고문, 서울신대 이사, 교단 부총회장 및 유지재단 이사, 한국성결신문 발행인 등으로 개교회뿐만 아니라 연합활동을 통해 교단의 발전과 부흥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그의 성결한 헌신은 황조근정훈장(1981년), 청조근정훈장(1994년), 한국기독교선교대상(2000), 피스메이커상(2007년) 등의 영예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생전 이와 같은 상보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아가려는 신앙과 신념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이라고 늘 고백하곤 했었다. 

고 김상원 장로는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런 성결인이다. 법을 사랑하고 국민들을 아꼈던 그의 헌신과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릎 꿇었던 그의 거룩한 신앙은 오늘도 세상과 마주하는 후배 성결인들의 뜨거운 가슴에 설레는 도전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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