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E. 카우만의 회심과 성결 체험 ③ 

찰스 카우만은 아내 레티의 회심을 계기로 믿음의 길을 회복했다. 레티는 신앙적 성향은 부족하지만 예술, 문학, 음악으로 둘러싸인 부유하고 풍족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대도시의 환경은 레티의 문화적 성향을 흡족하게 채워주었고, 부부는 특히 그랜드 오페라의 매력에 빠져들 었다.
1893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부부는 교회의 초대를 받고 어느 오페라 가수의 찬양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레티가 오페라 가수의 간증에 감동을 받고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렸다. 세상적인 만족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왔던 그녀의 영혼에 영적인 지진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녀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이 추구하던 세속의 즐거움들을 내려 놓았고, 급격히 변화된 그녀의 삶은 남편 찰스를 놀라게 했다. 레티는 남편 찰스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찰스는 ‘전신 사무소에서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며 회피했다.
그럴수록 레티는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고, 탕자의 회복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거듭 간청했다.
하루는 찰스가 아내의 간청에 이끌 려 은혜감리교회(Grace Methodist Church)의 부흥집회에 참석했다. 강사는 헨리 오스트롬 (Henry Ostrom) 등 목사였다. 그 강사가 설교하는 동안, 찰스에게는 시골교회의 부흥회 장면들이 떠올랐고, 어릴 적 회개석(mourner’s bench)에서 경험했던 은혜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찰스의 마음을 위로 하셨던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도 생각났고, 상기된 얼굴로 받은 은혜를 간증하던 사람들도 생각나며, 깊고도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생겨 났다. 무엇보다 보잘 것 없는 자신의 기도를 통해 아내의 삶이 연명 되고, 아내를 살려주시면 주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던 장면이 가장 절실하게 생각났다. 찰스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 아내가 강단 앞으로 함께 나가자고 했지만, 찰스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것이 찰스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하지만 레티는 강단 앞으로 나가 새롭게 회심한 무리와 함께 섰다. 그순간 마치 거대한 낭떨어지가 그들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은 것처럼, 찰스는 처절한 외로움을 느꼈고 마음이 심히 아려왔다. 찰스의 마음 속은 회사와 계약한 전신사무소, 자신의 일터, 미래의 직장에 대한 생각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싸움이 한창이었지만, 평화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갈보리라 불리는 곳’ 에 내가 진정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던가? ‘예수를 신뢰하고 그에게 굴복하라 그리고 가라”는 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렇게 할 힘이 찰스에게는 없었다.
집회 후, 부부는 집으로 향했다. 찰스는 깊은 뉘우침 속에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고, 깊은 탄식과 함께 울음이 터져나왔다. 부부는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고, 불을 켤 시간도 없이 찰스는 의자 곁에 무릎을 꿇고 방탕한 세월을 회개하며 자신의 삶을 주님께 의탁했다.
성령께서는 찰스의 과거가 주님의 보혈 아래 있으며, 탕자의 길에서 돌아온 아들이 되었다고 확증해 주셨다. 찰스는 그때의 기쁨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었던지! 평강이 내 마음 속에 넘쳐났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이제 나는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나란히 걸어 본향으로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 날은 마치 더없이 행복한 새로운 결혼식 날과 같았다.”
“주여! 나를 어디에 쓰시려 하십니까?” 믿음의 길을 회복한 후, 찰스가 주님께 드렸던 첫 질문이었다. 아니 회심하는 날부터 찰스가 주님께 끊임없이 드렸던 질문이었다. 주님은 그를 ‘사람 낚는 어부’로 쓰기를 기뻐하셨고, 찰스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회심 후, 찰스는 6개월 만에 75명의 영혼을 주님께로 이끌 정도로 기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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