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선입견의 이념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과오를 이제 벗어나야 한다 
역사가 이념의 도구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다큐 영화 ‘건국전쟁’의 관객 수가 100 만을 훌쩍 돌파했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건국전쟁’에 대한 역사 논쟁이 첫 화면에 올라온다.
역사 유튜버들의 논쟁이 치열하다. 욕설이 나오고 상대를 비방하기까지 한다.
논쟁을 지켜보면서 ‘백년전쟁’이란 다큐 영화를 알게 되었고, 보아야만 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13년도에 제작하 였는데 고맙게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었 다. 제목은 두 얼굴의 이승만이다.
삽화부터가 섬뜩했다. 내용 전개 속 배경 화면들은 선정적이기까지 하였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듯하다. 선전 선동? 내용은 공금으로 백인 미녀와 놀아난 플레이보이로, 테러리스트, 하와이 깡패로 이승만을 비하하였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놀라 
 
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는 역사관의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왜? 이럴까? 이 질문 속에 ‘건국전쟁’, ‘백년전쟁’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건 역사관의 차이가 아니라 이념 전쟁이구나!”
20세기 한반도에서 이념의 갈등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가져왔다. 한마디로 죽음과 탄식과 원망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 해방과 함께 38선을 중심으로 북은 소련으로 남은 미국의 군정 으로 나뉘었다. 남쪽에는 가난과 지형학적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있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삼고 귀국한 정치인 이승만은 지지 기반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가 초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장애를 극복했을까? 그 중심에 공산주의라는 다른 이념이 있었다. 해방 후 이념 갈등은 첨예하였고 6.25 동란이라는 전쟁까지 가져왔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수 없는 장애물을 극복한 만큼 비례하여 이념의 갈등이 있었고 그에 따른 아픔이 있었다.
이승만은 이념 갈등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 서거 54년이 지났지만 “건국전쟁”을 통해 나타난 현상은 아직도 이념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이념의 눈으로 아니 이념이 가져온 상처로 역사를 보는 것이 바른 것인가? 그럴 수없다. 이념은 시대의 산물로 절대적이거나 영원할 수 없다. 바뀌어 왔고 바뀔 것이다. 이념으로 사실을 왜곡 훼손하면 사실에 담긴 진실이 사장될 것이다.
이념을 벗어나기란 쉽지만은 않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승만을 지지하는 쪽이다. 그가 한성감옥에서 집필한 독립 정신의 ‘독립과 자유’는 3.1 운동의 독립 선언문과 맥락을 같이 했고 결국 자유 민주주의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역사 논쟁의 수많은 댓글이 묻지 마지지자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편견과 선입견을 가져오는 이념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과오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가 사관은 있어야 하되 이념의 도구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사순절 기간이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당시 공회에서 예수님을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것이고 이에 따라 로마가 와서 자신들의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갈 것이라며,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유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 곧이념이 될 수 있는 내용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규정하기로 결의했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즉, 시대 이념으로 예수님이 단지 로마의 권력을 잠재우기 위하여 죽으셔야 할 분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 해석을 통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보아야 할 하나님의 영광과 대속과 구원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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