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더욱 견고해지고 
주의 일에 힘쓰고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는다

1991년 7월 7일 선친께서 부산의 M 병원에서 담석증 수술을 받으신 후 의식을 잃고 6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두 발로 걸어서 병원으로 들어갔던 아버지가 수술 후에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마지막 작별 인사도 없이 황망하게 가족들의 곁을 떠난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가족들은 쉽게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한동안 우리 가족들은 가장을 갑자기 떠나 보낸 실의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친의 장례식은 절망과 슬픔의 시간이 아닌 은혜와 소망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빈소에는 찬양 소리가 흘러넘쳤고 서로를 향한 위로와 격려의 말들로 장례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좌절과 고통을 상심과 슬픔이 아닌 하늘의 기쁨과 감사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족들이 가진 부활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사망아! 너를 이기는 것이 무엇이냐?’ 
역사이래 사망을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죽음을 초월하고 해탈에 이르렀다던 석가모니는 죽음의 순간 “생자필멸(生者必滅)을 명심하라” 산자는 반드시 죽게끔 되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석가모니는 80세에 죽어 인도의 쿠시나가르에 무덤을 남겼으며, 공자는 73세에 죽어 중국 광동성 취푸에 무덤을 남겼고, 마호멧은 63세에 죽어 아라비아 메카에 무덤을 남겼습니다. 

수년 전 러시아 붉은 광장에 갔을 때 레닌의 묘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50불을 지불하고 레닌의 묘로 들어갔더니 시신이 썩지 않게 방부제로 처리하고 무덤에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여서 생전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참배하기 위해서, 혹은 구경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부제로 처리하여 박제의 모습으로 누워 있는 레닌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육신이 썩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인생의 종착점은 무덤이요 죽음입니다. 모든 물은 바다로부터 왔기에 바다로 흐르고 불은 태양으로부터 왔기에 하늘로 올라가고 인생은 하나님께로 왔기에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온 곳이 있기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인간이 본능적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덤의 종교가 아니라 빈 무덤의 종교,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일 누군가 예수님의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낸다면 기독교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다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우리 모두를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

 

400번 이상 반복적으로 기록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사백 번 이상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실 것입니다!”라고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라고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동일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예수님의 부활, 성도의 부활입니다. 부활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소망이요, 기독교만이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부활이 없는 종교가 구원을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구절이 고린도전서 15장에 8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부활은 반드시 있다.” “틀림없이 있다.” “확실하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그분은 진리가 되고 천국 가는 길이 되고 영원한 생명 영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예수 안에서 죽는 모든 자들이 부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요, 그리스도인은 거짓 증인이요, 역사상 가장 사악한 사기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것이 거짓말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평생을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은 인류 최대의 실패자가 될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순교한 자들은 인류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고 이생의 삶이 전부라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우리의 희생, 봉사, 섬김, 충성도 모두 헛된 것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허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셨다.” “지금도 살아 계시다.”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기에 우리의 믿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닌것입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모든 것이 바뀌어졌습니다.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 제자들은 부활을 전하다 매를 맞고 돌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갖은 고난을 당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툴툴 먼지를 털고 다시 전도현장으로 달려 나아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요, 유일한 행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여전히 문제가 있고, 이 세상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기에” 부활의 소식, 부활의 복음, 부활의 능력을 안고 오늘도 담대히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이 있기에’ 어떤 일을 당하여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더욱 견고해져야 합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며,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예수님 만이 참 구원자 되시고, 완전한 속죄자 되심을 믿으며,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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