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다양한 상상력 소재 ‘부활’
SF선 “몸 복제하고 기억 다운로드” 

부활절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문학작품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부활』이다. 귀족 네흘류도프는 배심원으로 참여한 재판에서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카튜샤를 만난다. 카튜샤는 매춘부로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데 네흘류도프는 이 여인의 불행한 삶이 자신이 젊은 시절 저지른 무책임한 하룻밤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카튜샤는 네흘류도프의 아이를 임신한 뒤 하녀로 있던 집에서 쫓겨나 매춘부로 전락했던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유죄판결을 받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카튜샤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따라 나섰고 그곳에서 인간의 비참과 죄를 목격하고 삶에 대해 고뇌한다. 이 소설은 네흘류도프가 어느 밤 마태복음 18장과 산상수훈을 읽고 새로운 깨달음과 희망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 마지막은 이렇다. 

그날 밤부터 네흘류도프의 생활은 전혀 새로워졌다. 물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삶의 새로운 장이 그의 일생을 어떻게 끝맺어 줄지는 미래만이 보여줄 것이다. (민음사, 부활 2, P379)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톨스토이가 만년에 쓴 걸작이고, 제목마저 ‘부활’이니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부활신앙의 진수를 보게 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작가가 전하는 부활은 우리가 신앙 고백하는 부활과 다르다. 이 작품이 전하는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삶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를 받고 거듭나는 중생에 더 가까운 듯하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김동리는 경주의 유교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인 어머니 덕분에 기독교 계통의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사반의 십자가 , 무녀도』등에는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김동리 기념사업회가 발간한 김동리 문학전집 10권 역마 에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다룬 부활』이란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부활’이란 제목과 달리 작가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던 것은 아니라는 관점을 취하며 예수의 부활을 부정한다.  작가는 아리마대 요셉이 로마 병사들이 예수의 다리를 꺾지 못하게 막았고 거의 죽어있던 예수를 무덤에서 구출했다고 상상한다. 

톨스토이와 김동리는 ‘부활’이란 제목의 소설에서 정신적인 부활과 부활을 부정하는 가설을 제시한다. 러시아와 한국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소설적 상상력으로도 몸의 부활은 감당하기 어려운 소재였던 것 같다. 바울 사도가 아테네에서 만났던 에피쿠로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의 유물론자였던 그들에게 바울이 전한 예수와 부활은 까마귀 소리처럼 헛된 말장난이었다. 철학자들의 이성이 인정하지 않고, 저명한 문학가들의 상상력도 피해 갔던 피해갔던 몸의 부활이 최근 나온 SF 소설들에서 가능성 있는 현실로 묘사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 중인 영화『미키7의 원작인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은 복제인간을 소재로 했다. 인류가 다른 행성을 개척하는 미래의 어느 시대, 위험한 일을 전담하는 익스펜더블이란 사람들이 있다. 익스펜더블의 신체 조직 샘플은 시스템에 업로드 되고 기억은 주기적으로 백업된다. 만약 이들이 사고로 죽으면 저장되었던 신체 정보에 따라 몸이 복사되고, 백업되었던 기억은 다운로드 되어 똑같은 인간이 만들어진다. 제목인 ‘미키7’은 일곱 번째 복제된 미키라는 뜻이다. 한편,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단편『관내분실』에는 죽은 사람의 기억과 행동패턴이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이 나온다. 엄마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를 딸이 다운로드 해서 보며 엄마를 새롭게 알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몸의 복제와 기억의 다운로드를 소재로 하는 SF 작품들은 몸의 부활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익한 상상력을 제공해준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분해되고 뇌에 저장된 기억은 사라지는데 이것을 어떻게 되살리냐 질문한다. 

그런데 몸의 부활을 증언하는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어놓고 계시며(마 10:30), 우리가 살면서 흘린 눈물이 담긴 병과 이 사정이 기록된 책이 있다고 전한다(시56:8). 머리털은 내 자신도 모르는 자세한 생체 정보고, 생명책은 이름만 나열된 단순 기록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살았던 인생을 모두 기록한 방대한 데이터 아닐까? 휴대폰을 분실해도 인터넷 클라우드에 자동 저장된 사진과 연락처를 최신형 휴대폰에 다운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죽어 몸은 썩고 기억은 사라져도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 생체 정보에 맞게 신령한 새 몸을 다시 만드시고 생명책에 보관되어 있던 고유한 기억을 그 몸에 다운로드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새로운 몸과 고유한 기억이 결합되어 과거와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기독교가 전하는 부활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가 믿고 전하는 부활은 몸과 영혼의 부활이다. 영혼의 부활만 전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부활을 믿을 수 있었겠지만 기독교는 처음부터 몸이 다시 사는 부활,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는 부활을 전하고 믿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에 있는 상처를 보여주시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손에 있는 못 자국은 손을 펴서 보여주면 되지만 옆구리의 상처는 옷을 벗어야 보여줄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 분 몸에 있는 상처를 확인시켜주시기 위해 옷을 벗고 맨 몸을 보여주신다. 그 몸의 상처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십자가의 예수님이 같은 분이란 증거이고, 그분께서 온몸으로 하나님께서 순종하고 세상을 사랑하셨던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몸과 기억을 갖고 부활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희생했던 몸과 기억을 알고 계시며, 버리지 않으시며, 다시 되살리실 것이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의 몸에서도 사랑하며 순종했던 증거들이 발견될 것을 믿으며, 그 기억들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날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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