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새긴 비웃음

압살롬이 이르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청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그에게 보내니라(삼하 13:26, 27)

아버지 앞에 서 있다. 내 아버지 다윗 왕은 나이 탓인지 젊은 시절의 총기 어린 눈빛을 잃었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다녔어도 보란 듯이 살아남은 명장임에 틀림없지만 이제는 자식의 마음도 읽을 줄 모르는 무능한 왕일 뿐.

이복형인 암논이 내 누이동생 다말의 순결을 짓밟고도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 내쫓아버린 사건이 2년 전에 있었다. 수치와 고통으로 울부짖는 동생을 겨우 달래 내 집에서 보살펴 왔지만 난 지금껏 누구에게도 그 사건에 대해 말 한 마디 꺼내지 않았다.

다들 나나 내 동생 다말이 모든 것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착각을 할 지 모른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들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내 마음에는 시퍼렇게 날 세운 칼이 암논의 심장에 꽂힐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는 동생을 볼 때마다, 비록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내 마음 속 칼은 이를 갈며 울어댔다. 암논의 더러운 피가 흐르는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한 기세로 그렇게 칼이 통곡을 했다.

모두가 안심할 이때가 바로 복수를 실행할 때라는 판단이 섰다. 마침 양 털을 깎는 날이 다가와 잔치를 벌일 빌미가 생겼다. 틀림없이 아버지는 내 청을 거절할 테고, 그러면 아버지 대신 암논을 초대하면 된다.

암논은 단순하고 경솔하기 때문에 2년간 잠잠한 나를 경계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본래 술을 좋아하는 그가 술자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술잔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술에 취해 취기가 절정에 올랐을 때, 그의 심장에 칼을 꽂을 것이다. 다말을 범하고픈 욕정이 절정에 올랐을 때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를 숨이 끊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후회하게 할 것이다. 다말에게 흘리게 한 피눈물을 자신의 심장에서 몇 배로 쏟아내게 할 것이다.

잔치에 와달라는 내 청을 들은 아버지는 지금 내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내 청에 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 하지만 그의 눈빛이 벌써 대답하고 있다.

사실은 암논보다 더 미운 것이 아버지다. 암논이 저지른 일을 알고도 한 차례 화를 냈을 뿐 아버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에겐 암논의 죽음이 그 대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느낄 고통의 시작일 뿐. 지금 아버지를 향해 짓고 있는 미소가 내 안에서 요동치는 복수의 칼끝이 내 얼굴에 새긴 비웃음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모른다. 그 칼끝이 암논의 심장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심장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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