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로, 정반대의 뜻이다. 한마디로 의식과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방향이 보인다는 이야기다. 최근 유명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이 충격을 주고 있다.

연예인이며 크리스천 방송인 정선희 씨의 남편 탤런트 안재환 씨가 자살했다. ‘성도 안재환’ 이라는 영정 사진 앞에 놓인 위패에 시선이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크리스천 연예인의 자살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은주, 유니, 정다빈, 그리고 최진실 등….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신앙 좋다고 알려진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은 큰 아픔이며 손실이다.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유명인과 동일시하여 자살하는 베르테르효과, 즉 모방 동조 자살을 시도할까 우려하며 주변인과 교회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더하게 되었다.

돌봄이 필요한 연예인들
크리스천 연예인이 자살을 선택한 데에는 개인의 심약함만을 탓할 수 없다. 다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경악할 일이다. 연예인들이 겉보기에는 화려한 생활을 하지만 실제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에 직면한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교회의 돌봄을 쉽게 받을 수 없는 소외계층이란 표현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나 같은 문제도 사람에 따라 위기 대처능력에 차이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 자살 충동을 느낄 수는 있으나 자살을 부추기는 문화는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교회가 나서야 한다, 자살 사건이 있을 때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자살 방지와 예방에도 힘써야 한다. 자살은 흥미거리 기사나 냄비처럼 끓다가 식어버리는 가십 기사거리가 되어도 안된다. 교회는 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하고, 누구도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얘기를 예언자적 입장에서 선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절망을 딛고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오직 교회에 있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자살로 인한 죽음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이미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성도의 자살행위를 막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이나 신앙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금기사항이라고 언급조차 꺼리는 것은 교회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목회자들이 회피하면 할수록 수많은 성도들은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한 순간 수치감에서 삶의 희망과 의미를 잃었거나,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명예와 지위를 한 순간 상실함으로 인해, 극한 가난이나 후천적 사고로 지체 장애를 얻거나 학과 성적의 저조함으로 오는 상실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오는 노화현상을 자연스럽게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할머니가 투신자살하였고, 학업성적이 저조하다고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고, 구조조정 불안감에 공무원이 한강에서 뛰어내려 숨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살사건을 보면서 정말 죽음을 선택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는지, 이런 고민을 해결해 줄 교회는 무엇을 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자연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있으므로 자살은 자연의 순리에 반하는 것이며, 하나님 주신 계명에 반대되는 행위요 큰 죄라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규정했다.

하나님의 작품인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주어진 시간을 선용해야 하고 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생명을 영위하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따라서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며, 인간 마음대로 고귀한 생명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살은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역하는 행위다. 자기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다면 막다른 골목이라고 느껴지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고 자신의 극단적인 자살 행위를 통제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감당해야할 우리의 의무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사회가 되도록 교회가 나서자.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의 고독과 절망과 외로움을 깊이 이해하고 다가가자. ‘자살로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가라’, ‘의식을 변화 시키라’고 쉽게 말은 하지만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형편과 깊은 속내를 얼마나 교회는 헤아리고 있는가?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연예인들을 한 사람의 성도로 보고 돌보기보다는 교회 홍보의 수단인 유명인사 정도로만 여기지는 않았는지 반성하자. 연예인 돌봄 사역에 전문성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유가족들과 지인들이 받은 마음과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들이 겪게 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영적 돌봄에도 교회가 힘을 기우려야 한다.

한 전문 사역자는 자살 문제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3단계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첫 단계는 자살을 상업적 소재로 삼거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합리화하는 자살문화를 분별하고 경고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Watcher). 나아가 여기에서 머물지 말고 두 번째 단계로 성경 진리로 무장하도록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가르쳐야 한다(Guider). 세 번째 단계로 생명문화를 창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Producer). 기독교 문화는 생명문화이다. 사망의 어두움이 짖게 드리운 세상에 첫 열매가 되신 부활의 생명문화를 우리 사회에 꽃피워 잘못된 자살의 문화를 고쳐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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