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인가?’ 하는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문화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용자의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에 참여하고 창조하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성격적 이해를 토대로 현재의 문화 현상을 파악하여 우리가 어떠한 생각으로 각 처소에서 문화를 만들 것인가를 연구, 고민해야 한다.

성경적 문화관의 출발점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는 달리 문화는 인간이 만든다는 것이다. 자연은 창세기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미 그 품질보증을 해 놓으셨다. 하지만 문화를 보는 관점은 다르다. 성서 속 인간은 타락한 죄인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다. 문화는 그러한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자신의 욕심대로 만들 수 있고 인간 자체의 죄 된 속성이 반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바른 것인지 그른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의 관점에서 좋은 문화란 무엇일까? 창세기 6장의 방주의 문화가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방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물이다. 방주에 탄 모든 생명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좋은 문화의 역할은 사람을 살리는, 즉 생명의 문화이며 구원의 문화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생명의 문화를 만든 존재가 갖춰야할 조건에 관한 것이다. 방주를 만든 노아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며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의인이었다. 반면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은 그릇된 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하나님의 간섭을 거부하며 인간의 기술을 뽐내기 위해 만든 바벨탑의 문화는 죽음과 파괴의 문화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방주를 만들 때 나무와 나무를 붙이기 위해 사용된 재료인 역청(몰타르)은 바벨탑을 만들 때 역시 똑같이 쓰여 졌다. 그렇다면 역청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답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그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의 문제며 따라서 문화의 창조주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문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현대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 첫 번째는 이미지 중심의 판단으로, 모든 것을 감각으로 수용하려고 하는 경향이다. 담배광고에 특정 캐릭터나, 따뜻함을 심어주는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그것을 자연스럽게 담배 자체에까지 연결시키는 전략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감성을 활용해서 문화를 읽기 원하지만 그 방향은 어디까지나 공동체성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성과 영성을 사용한 판단이 감성적 판단과 더불어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 오류는 자기중심적인 판단이다. 내가 보기에, 내가 듣기에 좋으면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사사기적인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사사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인들처럼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인 것이다. 이는 자신이 보고 느끼는 바가 바로 진리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를 낳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동쪽을 가리켜도 해가 뜨는 곳은 정해져 있듯 우리는 우리의 느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진리를 알고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를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그 대안으로 가장 먼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버려야 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철제침대 위에 눕혀 놓고 침대 길이에 사람을 맞추었다. 모든 사람을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는 바로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창조할 문화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신다. 전혀 예상치 못한 데에서 장점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톨킨이 오직 그의 상상력만으로 ‘반지의 제왕’을 써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담은 판타지로 세상을 놀라게 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상력과 저마다의 달란트를 발견하고 활용해야 한다. 누가 역청을 다루는가가 문화의 가치를 결정하듯 인간을 바꾸는 것이 문화를 바꾸는 지름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을 바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달란트와 문화적 이해를 겸비하여 생명을 살리는 방주의 문화, 좋은 문화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위 내용은 1월 20일 중앙교회 청장년위원회에서 실시한 특강에서 ‘그리스도인과 문화’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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