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의 지도자를 성직자라고 한다. 기독교계에서는 이들을 목회자(목사)라 하고 대외적으로 하나님 종, 교역자, 사자 등으로 불린다. 이들은 안수례를 통하여 대외적으로 구별되며 그 직에 합당한 존재로 살고 그 직에 헌신하겠다는 결심의 선포와 함께 제복(가운)을 입는다.

교단 법에 목사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깨끗함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며 교회와 사회에서 비판을 받은 일이 없는 자다. 그 임무로는 예배를 주장하고 설교를 하며 성경을 가르치고 성례전을 집행하며 장로와 협의하여 교회를 치리하고 불신자에게 전도와 빈궁한 자를 돌보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교부 그레고리는 모든 성직자는 성별된 사람으로서 그들의 행동수칙을 선포했다. 첫째, 다른 사람을 씻어주기 전에 자기가 먼저 씻음을 받아야 되고 둘째, 다른 사람에게 빛을 주기 전에 빛이 되어야 하며 셋째, 다른 사람을 거룩하게 하기 전에 먼저 거룩해야 되고 넷째,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나가게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나가야 되고 다섯째, 다른 사람에게 지혜를 논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지혜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빈도 설교자는 청중을 감동시키기 전에 본인이 먼저 그 설교에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얼마 전 학력 문제와 가짜 박사 문제로 파문이 확산되고 대학가와 연예계 등 각계각층에서 검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학박사 가운데도 가짜 박사의 퍼센트가 높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오늘날 교역자들 중에 목사직함보다 박사 호칭을 선호하는 경향에 이르러 교계를 혼돈 시키고 있는가 하면 진짜 박사들까지도 의심의 눈총으로 바라 보게 된다.

박사란 학문과 지식의 상징이므로 교회에선 어떤 이유로든지 교역자란 명칭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교회의 존재가치와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은혜를 받고 영적성장을 이루어 중생의 삶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데 있지 학문이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16세기의 시대적 산물이 결코 아니라 진리수호의 장이며 거짓과 외식이 용납되지 않는다. 2천년 전 세례요한은 요단 강가를 오가며 회개를 촉구했다. 예수께서도 율법사를 향하여 화 있을진저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고 말했다. 사도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모든 명예와 학문과 지식을 분토와 같이 버렸을 뿐 아니라 지식은 사람을 교만에 이르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우느니라(고전 8:1)고 했다.

12세기 실천신학자 크레이브 버나드는 성직자의 최고의 지도력은 겸손이며 사랑도 설교도 진실 그 자체이어야 된다고 했다. 칼빈도 그리스도인은 전 영역에 있어 실천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고 필립스 브룩스는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장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그분의 도구여야 하며 명예심이나 웅변술로 과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마크엘률 교수는 오늘날 잘못된 지도자에 의해 교회들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교역자는 기독교의 상징적인 존재로 대표되고 교역자의 역량은 곧 그 시대의 기독교의 질이며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