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한 그리스도인은 분별의 힘이 있습니다. 사울이 회심하는 장면은 행 9장 17~18절입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여기서 비늘은 그리스어 λπει′  입니다. 이는 ‘꽃봉오리의 겉 깍지’입니다. 꽃봉오리를 둘러싸고 있는 겉 깍지가 벗겨져야만 꽃이 피고 향기도 나고 결국에는 열매를 맺게 되겠지요.

사도바울같이 회심하여 분별의 힘을 얻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갈 6:1에는 회심한 그리스도인을 ‘신령한 너희는’이라고 표현하는데 ‘신령한’ 이는 그리스어로 πνευματικο′로서 ‘성령에 의한’, ‘성령으로 나는’입니다.

성령으로 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바울같이 ‘분별의 힘이’ 있을 것이고 이는 성경적인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미몽, 망상, 자기도취, 독선적인 생각, 기상천외한 자만심으로부터 벗어나 새 사람이 되어 현실을 직시하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겸손한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램지(W. Ramsey)는 ‘갈라디아인에게 보낸 사도바울의 편지’(St. Paul's Epistle to the Galatians)에서 “분수를 모르는 사람, 만족함이 전혀 없는 사람의 공통점은 심령이 공허한 상태에 있다”고 그 안타까움을 말합니다.
자신에 관하여 그 누구보다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만 올바른 사람으로 세워지고 그 존재기능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수를 몰라서 분별의 힘이 없어 여전히 미몽, 망상, 자기도취, 독선적인 생각, 기상천외한 자만심에 빠져 있다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가정, 섬기는 교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에서 겸손 ταπεινοφροσυ′νη은 ‘정도를 넘지 않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다’인데 그러한 겸손한 모습이 허영에 빠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커크(E.K.Kirk)는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The Epistle to the Romans)에서 “믿음의 분량과 분수에 맞는 생각은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며 정도(正道)이다”고 역설합니다. 믿음의 분량에 맞게 목회와 선교를 해야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성경에 66종류의 생각이 있는데 오늘 본문의 생각이 만약 κατανοε′ω라면 ‘주의 깊게 생각하다’, ‘특히 집중하다’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생각은 δοκεω′ ‘섣부르게 판단하다’, ‘임의로 간주하다’입니다. 참으로 분수를 모르는 생각입니다.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하면 파산하듯이 실력에 맞지 않게 대학원서를 접수하면 실패하고 아파트분양, 결혼, 주식, 건강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나이더(H.A. Snyder) 캐나다 틴데일 신학교 교수는 국민일보에 ‘한국교회는 교회건축을 하나님의 뜻인양 미화하지 말라’는 글을 기고했는데 이는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이 얼마나 불행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도바울같이 비늘이 벗겨져서 미몽, 망상, 자기도취, 독선적인 생각, 기상천외한 자만심에서 전부 벗어나서 우리 모두 다 불행을 예방하고 넘어지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분량과 분수를 유지하므로 완주합시다.

지난 호(1102호 14면) 주간말씀묵상 헬라어 원어는 온유 πραυ′τη, 세계 βι′βλο γενε′σεω, 나다 γεννα′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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