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호 교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마가복음 9장 17절)
장애아를 자녀로 둔 부모의 마음은 깊은 상처로 얼룩지고, 완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수모라도 기꺼이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본문은 그런 심정으로 예수님 앞에 나타나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마음을 토해내는 어느 장애인의 아버지와 하나님의 심정으로 그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만남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언뜻 낭만적이고 푸근한 미담으로 끝날 것 같지만 본문은 장애를 치료한 예수님의 기적을 간략하게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장애 너머의 근본적인 원인과 사회적 정황에 집중한다.

즉 사람들의 시선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머물지만, 예수님의 의중은 상황의 본질을 간파한 후 사회 구성원 전체의 참여가 필요한 근본 치유책을 알리심으로써 재발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차원을 포함한다.

아이의 장애 치료에 관한 책임을 아이의 가족 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부여하는 사회적 명령인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무관심을 질타하는 꾸짖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특정 장애를 신의 저주로 인식하여 차별, 격리하는 당시 관례에 따라 장애인에게 무심한 이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들 역시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풍자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이 장면 내내 침묵을 지키다 마지막에 가서야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제자들의 모습은 장애를 대하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단지 특정한 사회적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기도와 믿음과 직결된 신앙 명제라는 충격적인 사실로 해석된다.

앞선 마가복음 6장에서의 성공적 결과와 달리, 치료에 실패한 제자들은(18절) 그 실패로 인한 분노 때문에 비뚤어진 고정관념과 차별의식을 침묵으로 표현한다. 제자들의 불편한 침묵은 지속적으로 여러 질문을 통해 장애가족에게 애정을 표명한 예수님과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오직 내 편의에만 집중하는 이기주의자를 상징하고, 이런 제자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는 집에 들어가 조용히 질문하는 28절의 냉소적 구절에서 정점을 이룬다.

장애인에 관한 일고의 관심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실패 이유만 궁금한 제자들의 이기심을 정확히 간파한 예수님은 ‘기도’라는 짤막한 답변을 통해 그들의 그릇된 편견과 자만심을 일거에 무너뜨리면서 장애인을 향한 배타적 편견과 차별을 하나님을 거스르는 불신앙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혹여 침묵하는 제자들에 대한 평가가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에 대비해서 본문은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24절)는  아버지의 외침을 통해 제자들의 숨겨진 편견과 차별의식을 정확히 조준한다.

구원과 영생을 위한 하나님의 초대가 인간의 믿음에 의해 완성되는 기독교의 교리체계를 생각할 때, 인간 권한에 해당하는 믿음을 하나님께 내어놓은 이 아버지의 겸손은 실패에 대한 분노를 끝까지 은폐하는 제자들의 자기중심적 태도와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즉 본문은 아버지와 제자들을 대조시킴으로써 장애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과 장애인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그들을 자신의 성공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얄팍한 이기심이나 차가운 냉대가 구원을 앗아가는 무서운 불신앙의 전형임을 알리는 것이다. 동시에 그 상처의 치유가 사회구성원 전체의 의무와 책임임을 명시하는 논리적 흐름을 치밀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본문은 장애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처연하게 무릎 꿇은 부모를 통해 말 못하는 신체적 장애보다 그들을 매몰차게 대하는 편견과 잔인한 태도가 진짜 용서받지 못할 장애라는 사실을 엄중하게 선포한다.

또 장애인의 가족에게 따스한 배려는커녕 온갖 조롱과 모욕을 던지는 행위가 장애인의 가족들 뿐 아니라 하나님을 폄하하는 무서운 죄임을 경고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교회의 진정한 사명은 천박한 의식수준과 구조적 차별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들을 보호하는데 있으며, 그 사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이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가 없음이 확실해진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에게 장애인들을 향한 나눔과 섬김은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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