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애 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부탁하며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먹이는 장면이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무릎 호소'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영상 속 부모들의 자녀는 대부분 학교가 설립된다고 해도 그 학교에 다닐 수 없다.

자녀들이 고학년이라서 졸업 후에야 학교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동안 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엄마들이 겪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들에게 무릎은 ‘굴욕’이 아니라 애절한 기도이자 간절한 소원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인터넷과 SNS,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청원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가까운 곳에 특수학교가 없어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장시간 통학을 하는 장애 학생의 불편함을 생각한다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요구다.

장애학생들을 이웃으로 둘 수 없다는 서글픈 행태는 비단 이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서초구의 ‘나래학교’, 중랑구의 ‘동진학교’도 주민들의 반대 벽에 막혀 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국적으로 19개 공립 특수학교가 건립에 난항을 겪고 있다.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될 때마다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한 주민들이 반대한 탓이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장애 학생 수는 2만 5,000여 명 증가했지만 전국 특수학교는 27개 교만 늘어났다. 장애 학생 약 9만 명 중 3분의 1도 특수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실정이다. 서울의 경우에는 2002년 경운학교(종로구) 이후 15년 만에 효정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쯤 되면 특수학교 설립은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의 ‘무릎 호소’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님비현상’과 장애인 혐오는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장애인은 사회의 각 영역에서 차별받고 있는데 최소한의 교육 기회마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우리 지역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법과 제도적 지원뿐 아니라 장애인을 우리 사회의 이웃으로, 형제로 받아들일 때 장애인의 참된 복지와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

한 나라의 복지와 사회의식 수준을 가늠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가장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다. 그 중에서도 장애인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선진 복지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특히 장애인에 대한 사랑실천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정신에 따라 이 땅에 처음으로 장애 교육을 실시하고, 정부보다 앞서 특수학교를 설립했다. 해방 후 근대 특수교육과 특수 교사를 양성하는 일도 기독교인이 먼저 시작했다. 지금도 기독교 정신으로 세운 특수학교가 가장 많다.

다시 한 번 우리 주위의 장애인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병든 이들, 가난한 이들, 몸이 불편한 이들의 몸과 영혼의 치유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돼야 한다. 장애인들과 하나되는 교회가 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장애 학생들도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독교인이 먼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외면과 차별이 아닌 통합과 공존의 문화가 한국교회에서 먼저 싹트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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