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 선교사 암흑의 장애교육 불 밝혀
기독인이 설립한 특수학교 다수
특수 교육가 양성도 기독인 앞장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내 동네에 기피시설은 안 된다’는 ‘님비’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배려받아야 할 장애인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고아나 과부, 가난한 자, 장애인 등 소외받는 이들을 섬겨 온 한국교회가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과 인권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장애인 특수학교와 특수교육이 교회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특수교육의 효시는 기독교이다. 서양인 의료선교사 로제타 홀 여사가 1894년 시각장애인 소녀 오봉래를 교육한 것이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시작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설립한 홀 선교사는 1897년 국내 처음으로 한국말 성경의 일부와 십계명을 번역해 한글점자를 만들어 시각장애인 교육에 새 장을 열었다. 홀 선교사는 이어 1898년 조선 최초의 시각장애아 학교인 평양여맹학교를 세웠다. 통합교육 형태를 취한 시간제 특수학급 방식이었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 특수교육의 효시가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장애인을 홀대하는 시절이었지만 홀 여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암흑 속에서 장애인을 위한 빛을 밝힌 것이다.

교회사 문헌에 따르면 예장합동 측 승동교회가 1894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도와 선교를 펼친 기록도 있다. 기독교가 전래되자마자 한국교회는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1900년 평양 정진소학교도 특별학급을 개설하고 점자교과서로 성경, 지리 음악, 산수 등과 맛사지 등의 실기과목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특수학교도 한국교회의 힘으로 세워졌다. 당시에는 일제에 의해 특수교육이 이뤄졌는데, 1935년 이창호 목사가 평양에 광명맹학교를 설립하면서 특수교육도 자치를 이뤘다. 

장애인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양성하는 ‘특수교육과'를 최초로 만든 사람도 기독교인이었다. 대구대학교 설립자 고 이영식 목사는 1946년 4월 광복 후 대구에 최초로 사립 특수학교 대구맹아학원(대구 영화학교, 대구 광명학교의 전신) 등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과 학교를 많이 세웠다. 그런데 특수학교를 설립하고 보니, 전문 교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1956년 한국사회사업대학교(현 대구대)를 세우고, 국내 최초로 특수교육과를 신설했다. 국가도 장애인들을 돌보지 못했던 그 시절에 기독교인이 장애인 교육과 복지 향상에 힘썼던 것이다. 지금도 대구대 캠퍼스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5개 특수학교가 한 곳에 있다. 대구대는 또 2011년 3월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고등교육 전문 기관 ‘케이페이스(K-PACE)’, 장애인 대학을 최초로 설립했다.

한국교회는 지금도 장애인 선교와 교육에 꾸준한 관심과 지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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