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규 교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서 많은 학술적인 글과 설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신득의(Justification by faith)와 같이 신앙에 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고 교회론에 관한 말은 별로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가장 개혁되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교회론이다.

무엇이 교회인가? 흔히 부동산 중심의 성전 개념을 교회에 대입하는데, 이것은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약 시대의 성전 개념은 신약 시대에 폐기되었다. 교회는 결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불러내어 구원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에클레시아의 의미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려면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세워야 한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신앙적으로 성장시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목회의 본질이 아니던가!

좀 더 얘기를 진척시켜 보자. 사람은 그 특성상 움직이고 활동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이라는 말은 교회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임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신자들은 모이고 흩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신자들이 모였을 때에만 교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였을 때에도 교회고 흩어졌을 때에도 교회다. 신자들이 모일 때 그것을 모이는 교회(the gathering church)라고 하고, 흩어져 살아갈 때 그것을 흩어지는 교회(the scattering church)라고 한다.

우리는 교회로 모일 때에도 생명력 있는 역동적 교회가 되어야 하지만, 흩어졌을 때에도 교회가 되어야 한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는 서로 상보적이고 순환적인 관계를 가진다. 모이는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고, 흩어지는 교회는 모이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한다.

예배, 교제, 교육, 성례전 등의 활동은 그 자체로도 고유한 의미가 있지만 신자들이 흩어지는 교회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무장하는 역할도 한다. 신자들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하고, 말씀이 그의 의식과 삶을 인도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이 그의 성품을 형성해야 한다. 길을 걸을 때, 거래를 할 때, 승강기에서 이웃을 만날 때, 직장에서 동료와 대화를 나눌 때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한국교회에 부족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는 잘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잘 못한다. 교회 안의 삶과 교회 밖의 삶을 연결하지 못한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교회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무시한다. 그들에게 거룩함은 교회 건물 안에서만 경험하는 것일 뿐이다.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태도가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만연해 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는 단연코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우리의 제자훈련은 기껏해야 신자의 경건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 헌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서 흩어지는 교회로서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훈련하지 못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다.(요 16:18) 세상으로 보내진 그들이 그곳에서 모이고 흩어지는 교회로서 살아가도록 하셨다. 세상 안에 살아가지만 결코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금과 빛처럼 뚜렷하게 구분될 뿐 아니라 그들을 변화시켰다. 신자들이 배우고 훈련해야 할 제자훈련의 내용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

종교개혁의 계절에 다시 한 번 교회를 생각해 본다. 무엇이 갱신되어야 하는가? 부동산 중심의 교회관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교회로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모이고 흩어지면서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으로서 세상에서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길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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