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끼 염소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고 했나?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해당 본문과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이 구절의 의미가 무엇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왜 새끼 염소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아야 하는가이다.

첫 번째 질문인 이 구절의 의미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요리하지 말라는 것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인 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본문에 대하여 주석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누어진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이교들이 행했던 우상숭배와 관련된 관습이다. 2)토지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실시했던 일종의 주술적 행위이다. 3)어미의 젖으로 그 새끼를 삶는 것은 잔인한 행동이다. 4)젖과 고기를 함께 먹으면 소화하기가 어렵다. 5)그것은 부모와 자식관계에 대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6)상징적으로 추수감사의 의미를 오염시키는 일이다. 7)하나님께서는 새끼 염소를 요리할 때, 우유(젖)으로 만든 버터 대신 올리브유 사용을 원하신다. 8)그것은 지나치게 호화스러운 요리방법으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쾌락주의이다.

본문의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위에 제시된 제안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것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본문 내용이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것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나안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종교에서는 첫 곡식을 수확하여 거두어들인 후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는 것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관습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가지고 들로 나가 땅과 나무에 뿌렸다. 일종의 주술적 행위로서 땅의 비옥함을 증진시킴으로 다음 해에는 더욱 많은 수확을 확보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추수감사의 예물로 첫 곡식을 여호와의 전에 바치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가나안의 이방종교에서 행하는 관습을 따르지 말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땅의 비옥함을 유지시켜주시면서 풍성한 수확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기도 하다.

또한 본문 속에는 짐승의 어미와 그 새끼의 죽음을 멀리 떼어 놓아야 한다는 교훈도 담겨있다. 동물세계에도 자연 질서가 존재한다. 특히 어미와 새끼 사이는 사람처럼 깊은 애정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도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새끼의 죽음에 그 어미를 공범자로 삼는 일이 될 수 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말라는 것이 본문 속에 담긴 의미이다. 

이상과 같은 제안과 설명 이외에도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과 근거에서 그것이 금지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제안된 내용 전체가 의미 있는 해석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해야할 필요가 있다. 욥이 마지막에 자신의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회개한 것(욥 42:6)은 친구들의 설득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음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왜’(why)라는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은 ‘누구신가’(who)임을 깨달은 것이다. 관련 본문이 그에 해당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 그 자체이다.

해당 본문은 유대민족이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음식법의 중요한 근거이다. 유대민족의 음식법은 히브리어로 ‘카쉬루트’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적합함’이다. 영어로는 ‘코셔’(kosher)라고 지칭한다.

유대인의 음식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정한 것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것의 구별이다. 그에 대한 관련 내용은 레위기 11장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두 번째는 요리하는 방식으로서 고기와 우유를 함께 섞어 요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요리방식이 생겨난 것은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는 명령에 근거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우유를 모든 종류의 유제품으로 확대하여 적용시키고 있다. 한때 이스라엘에서는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커피에 우유로 만든 크리머를 섞어 마시는 것이 일반화된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유대인들은 고기를 먹은 후 크리머를 넣지 않은 커피마저도 마시지 않는다. 유대인 가정에는 고기를 담는 그릇과 유제품을 담는 그릇을 따로 구분할 뿐 아니라 혼동이 생기지 않도록 아예 다른 곳에 따로 분리하여 보관하기도 한다.

유대인들에게 왜 그런 ‘카쉬루트’ 음식법을 지키느냐고 물어보면, 명확하게 답변을 하질 못한다.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 지켜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음식법이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지냈던 유대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내적 결속력을 마련해 주었다. 이유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켜온 음식법이 그들을 지켜준 셈이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말씀이 우리를 지키는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