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곱디고운 은행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이 발 저 발에 밟혀 볼품없이 으깨진 은행 알의 잔재를 그 잎들이 덮고 있다. 쓸쓸함을 남기고 떠나는 가을의 끝자락이다.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까맣게 잊고 살다가 내년 10월이 되어서야 다시 종교개혁을 떠 올릴 것이다. 늦가을 계절 탓만은 아닐텐데 허전함과 쓸쓸함이 밀려온다. 가슴이 답답하고 시린 것 같기도 하다.   

500주년을 맞이한 뜻 깊은 해, 분위기에 휩싸여 나도 종교개혁의 진원지였던 중세교회를 새삼 살폈다. 틈틈이 자료를 찾고 책도 읽었다. 때로 서점에 들러 책을 들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머릿속에 밑그림 한 장이 그려졌다.

1346년부터 서너 해 동안 전대미문의 괴질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발병 후 닷새를 못 견디고 죽는 무서운 흑사병이 창궐하여 무수한 생명을 집어삼켰다. 불과 3년간에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줄었으니 그런 재앙이 어디 있으랴.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집안이며 거리며 가득 쌓여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죽은 자의 피부가 검게 변색하여 흑사병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교회도 심각한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장례미사를 담당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제들이 대부분 흑사병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었다. 사제 충원에 비상이 걸렸다. 결국 무자격자로 자리를 메우다보니 라틴어 성경을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 사제가 많았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교회는 면죄부 판매가 한창이었다. 성베드로 대성당 건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고안한 기발한 아이디어다. ‘짤랑!’ 헌금함에 돈이 떨어지는 순간 지옥에 간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고 사제들은 공공연히 설교했다. 그 돈이 온전히 건축비용으로만 쓰였어도 죄벌이 가벼웠을지 모른다. 적잖은 금액이 사제들의 무절제한 사치와 향락의 비용으로 새어 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힘있는 사제들은 친인척을 중용하여 특혜를 주고 이권을 챙겨 부를 축적했다. 

‘흑심’(黑心)의 사전적 설명은 ‘음흉하고 부정한 욕심이 많은 마음’이다. 중세교회 성직자들은 그 음흉하고 부정한 욕심에 깊이 빠졌다. 늘어지고 풍만한 옷자락 갈피를 탐욕으로 채우고도 태연했다. 흑심병에 깊이 감염된 것이다.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말할 수 없이 참혹했지만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유럽사회의 평등을 이루어 주고 농민과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고 사회적 신분도 상승했다. 간접적으로는 종교개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제들의 흑심병은 하나님의 교회를 크게 훼손시켰고 계산조차 불가능한 손실을 끼쳤다. 강한 전염성을 가진 이 병은 역사의 종말이 오기까지 숱한 영혼을 괴롭힐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흑심병을 앓고 있다. 성서가 탐욕의 도구로 전락한 중세시대처럼 한국교회가 말씀에서 멀어지고 있다. 조금 지나면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은행잎이 뭉텅뭉텅 쏟아져 내릴 것이다. 내 눈에는 은행잎이 스스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나무가 강제로 떼어 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낡아 쓸모없는 겉옷을 벗어야 새 옷을 입을 수 있어서다. 그러자면 알몸으로 겨울 눈보라와 사투(死鬪)를 해야 한다.

긴 인고의 세월은 은행나무에겐 죽음의 때이며 동시에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기회이리라. 새 봄, 새 잎, 새 열매는 죽음을 겪은 후에야 오는 축복이다.

한국교회가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은행나무에게 한 수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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