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1)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변하는데 문제는 변화될 것인지 아니면 변질될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변화는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 변질은 ‘성질이 달라지거나 물질의 질이 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뜻으로만 보면 이 둘은 비슷합니다.

이 두 단어는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변화’는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변질’은 나쁘게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말씀처럼 기독교인들은 선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들의 삶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고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성장하는 것 같지만 세상은 기독교를 폄훼하고 조롱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수화(化) 되어가지 못하고 세속화(化)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변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아닌 세상을 닮아가는 변질된 기독교는 세상 밖에 버려져 밟힐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로 가득하여 부패한 세상을 정화시키는 소금과 같이 자기를 녹이는 삶, 어두컴컴한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이 자기를 태우는 삶은 내가 먼저 예수 안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변화되지 않은 상태로 세상에 나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썩게 되고, 빛을 잃고 오히려 칠흑같은 어두움의 한 부분으로 전락하는 변질된 삶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주셨던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분노하기 전에 먼저 내가 십자가를 지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본문은 가나 혼인잔치에 대한 말씀으로 가장 화려하고 기쁨이 가득한 그곳에 꼭 있어야 하는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근심이 찾아 왔습니다. 이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하인들의 순종입니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 해법을 주님은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해법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일어난 이 포도주의 기적이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라고 했으니 종들은 아직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명령을 하였을 때 그들은 어떤 명령일지라도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손을 씻는 항아리 6개에 물을 가득 채웠고 다시 연회장으로 가지고 가라고 했을 때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들의 손으로 떠왔던 그 허드렛 물이 극상품의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어떤 염려, 걱정, 근심이 있습니까? 변화가 필요합니까? 그러면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순종하시면 됩니다.

하인들의 순종이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기적을 낳았듯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변화의 열쇠는 주님과 함께,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바로 당신의 순종의 삶에 있음을 유념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포도주의 기적에 참여하는 변화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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