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균 목사
종교개혁 500주년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계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와 일들을 계획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올해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은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연말로 들어서며 ‘개혁’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발생하면서, 신앙의 갱신과 개혁을 바라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달려가야 할까요? 저는 이때에 다시 종교개혁가들의 모토가 되었던 ‘오직 믿음’이라는 어구를 떠올립니다. 지금처럼 어떠한 소망과 기대를 갖지 못했던 유대민족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말씀은 후대에 의식 있는 종교개혁가들에 의해서 실천되어 살아 있는 기독교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믿음을 구사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달려갈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을 구사하여야 할까요? 나름대로 믿음대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힘들 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습니다!”라고 크게 선포하고 외치기만 하면 믿음을 구사하는 것일까요? 혼동스럽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믿음은 다음의 사항들을 기초로 구사되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믿는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는 아는 만큼 믿고, 믿는 만큼 역사가 일어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기에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에 관해서 망설여지는 것이지요.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부할 때, 믿음을 정확하고 온전히 구사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지식에 대한 경험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믿음의 대상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여도 그 지식이 머리에만 쌓여 있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없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가슴으로 경험한 지식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신을 줍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어떠한 이론적인 체계에 대해 경험을 통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경험해 갖게 된 확신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며 나아가도록 동력을 가져다줍니다.

셋째로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관한 경험이 지속적으로 쌓여가기 위해서는 그분께서 싫어하시는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붙잡고는 온전히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과 십자가와의 관계입니다.

나의 믿음은 어디가 고장나 있습니까? 무엇을 고쳐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종교개혁가들이 경험한 ‘믿음’을 온전히 구사할 수 있을까요? 온전한 믿음이 우리의 삶에서 구사될 수 있다면 신앙의 갱신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모여 교회 갱신의 기초가 놓여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