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인간이 감추고 있는 허상의 한 단면을 가차 없이 드러내보여 준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의 그럴듯한 말에 넘어간 리어왕은 자신의 나라를 두 딸에게 넘겨주었다. 왕이라는 지위를 잃은 리어는 결국 딸에게서 쫓겨났고 폭풍 속의 황야를 헤매다가 미치광이 거지로 변장한 백작의 장남을 만났다. 이 대목에서 리어는 명대사를 남겼다. “인간도 옷을 벗으면 너처럼 불쌍한 알몸에 두 다리를 가진 동물일 뿐이구나.”

▨… 도스토예프스키는 더 냉혹하게 감춰져 있는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 우리를 섬뜩하게 만든다. “하나님 죄를 지은 저를 많은 죄를 간직한 채 하나님 곁으로 가게 해주소서. …하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옥으로 떨어질지라도 거기서도 당신을 사랑할 생각입니다.” 이것은 아버지 살해 혐의로 재판받고 유죄선고를 당한 장남 드미뜨리의 기도이다. 그 기도가 자신의 삶과 욕망을 감추기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소름돋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감추고자 하는 모습일 것이다.

▨…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넷째 아들인 스메르자코프였다. 그는 머리가 뛰어나게 영민한 둘째 아들 이반이 들려준 “자유란 우연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허용될 수 있다. 신이 없는 인간은 자유다”라는 말에 설득 당했던 것이다. 결국 스메르자코프의 ‘신이 없는 자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로 귀결되었다.

▨… 그럴 리야 없겠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사로잡힌 자(성결인)라는 어떤 이들도 때로 ‘신이 없는 자유’를 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성결교회에서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거듭해서 벌어지는 현상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의 본질을 불쌍한 알몸에 두 다리를 가진 동물로 규정하거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탐욕으로 규정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 예수께서는 죄인들의 법정 자체를 거부하신 적이 있다.(요한복음 8장)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은 판결이 아니다. 죄인들이 법의 이름으로 세우려는 정의를 부정하고 법 자체를 녹여버리는 사랑의 선포다. 하나님의 정의의 집행이다. 자신의 불의를 감추기 위해 누군가는 돌을 던질 수도 있는 상황을 감내하시는 또 하나의 십자가를 지심이다. 누가 옳고 그르냐는 교단의 지도자, 법통들이 판단하겠지만 재판위원회 소동은 누가 보아도 비성결교회적이다. 이쯤에서 마무리되기를 모든 성결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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