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27~36)

장신익 목사
오래 전에 한 선교단체에 제자훈련을 받으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이들의 학교 전학 때문에 한 달 먼저 갔던 우리 가족에게 숙소가 문제였는데 마침 그 선교단체에서 하는 3주짜리 성경연구세미나에 등록하면 숙소와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에 무작정 등록부터 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숙식의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 강의를 들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중보기도 시간에 어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지 나누는 시간에 저는 경험이 없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목사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라는 용어가 처음이었기에 낯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매번 함께 기도회에 참석하였는데 그들이 보기에 불쌍하게 보였는지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에 너무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위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3주 세미나를 마치고 정식 제자훈련이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강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마치 산신령이 펑하고 나타나 “금도끼를 줄까? 은도끼를 줄까?”하는 식의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생각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신비로운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 때부터 감격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무엘 시대의 제사장이었던 엘리는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29절에서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와 그 아들들은 하나님보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삶이 더 우선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만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재물들을 갈취하였고,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기 아들들을 귀중히 여기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탐욕과 교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거나, 무시하게 만듭니다.

엘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지 않자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엘리는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다 전하여 들었음에도 또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맙니다. 결국 두 아들은 전쟁에서 죽고 본인도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맙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듣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생각이 먼저이고 내 계획이 우선입니까? 만약 하나님보다 내가 먼저라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삶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큰 저주요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선택하여 나아가야 하는지를 듣고 깨달아 새로운 삶,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에 축복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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