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죄악을 대속(代贖)하기 위해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성탄절기다. 성탄절은 예수 탄생을 통해 소망을 기원하는 기독교 최대 명절이자 온 인류의 축제이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의 성경 말씀처럼 예수 오심은 그 자체만으로 영광과 평화의 실현이다.

그러나 2017년 성탄절을 앞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핵 위험은 점증하고 있다. 전쟁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고 또 이념적 세대 간 갈등은 커지고 있다. 이를 봉합시켜야 할 정치는 실종됐고 불황은 깊어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국교회는 대형교회 세습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욱이 성탄의 의미와 문화가 점점 세속화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예수보다 산타와 선물로 대표되는 소비문화에 빠져 성탄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 오심’의 의미를 새겨야 할 교회의 성탄절 역시 연례 행사화 되면서 성탄의 감격이 퇴색되고 있다. 우리나라 초기 교회의 성탄문화는 상업화하지도, 흥청거리지도 않았다. 교회마다 산 넘고 물 건너 다니면서 촛불을 밝히며 ‘새벽송’을 통해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알렸다.

최근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 보다 '핼러윈' 같은 새로운 축제에 더 열광한다. 거리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분위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엔 종교를 떠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해를 정리하고 성탄절이 갖는 성(聖)스러운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그저 떠나고 즐기고 마시자는 분위기만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도 성탄절의 종교적 의미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미국 성인의 비중이 절반을 뛰어넘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종교적 색채가 드러나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대신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는 인사를 건네자는 캠페인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예 성탄의 역사성마저 의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성탄에 대한 이같은 오해가 생겨난 데에는 상업주의와 배금주의의 영향도 크지만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교회의 책임이 더 크다. 교회는 잘못된 성탄문화를 바로잡으려 하기보다는 그저 성탄절 행사를 화려하게 치르는 정도로 자족하지는 않았는가를 자성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상업화한 잘못된 문화에 동조하지는 않았는가도 돌아봐야 한다.

그렇다고 비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으며 흥청거리는 성탄절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낮고 천한 자리에 오신 주님의 희생과 헌신을 배우고 따르는 성탄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크리스천이라면 백화점이나 휴양지가 아닌 값없이 주는 소중한 선물들이 있는 교회로 향해야 한다. 성탄절이 성탄절답게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이 먼저 올바른 성탄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의미가 무엇인지, 기독교인들이 먼저 제대로 깨닫고 제대로 실천하고 제대로 전해야 한다. 우리부터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비신자들이 어찌 성탄의 그 깊은 의미를 깨달아 알 수 있겠는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섬김과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예수님의 희생의 삶을 실천하면 성탄의 의미도 살아날 것이다. 가장 높고 귀한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의 희생과 헌신을 닮아야겠다.

섬김과 나눔의 의미를 다시금 깨우치고 내가 먼저 그리스도인다워진다면 성탄절의 참된 의미도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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