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7남매 모두가 선교사의 삶 살아
선교사의 고된 삶 가족사랑으로 이겨내

▲ 한국어예배를 드리는 아이들.
▲ 온유의 피아노 콘서트에서 가족들과 함께.

"성탄절엔 온 가족이 어려운 이웃 찾아가 위로해요. 우리가 주님께 받은 넘치는 사랑을 조금 나누는 거에요."

▲ 온 가족이 매일 드리는 가족예배.
다둥이 가족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일본에서 사역하는 이상훈·장미숙 선교사 가족은 매년 특별한 성탄절을 보낸다.

첫째 환희(21세)부터 온유(17세), 찬송(13세), 평화(10세), 소망(8세), 초애(7세)와 승리(7세)까지 자녀 7명과 매년 노인시설을 방문해 성탄공연을 펼치고 있다. 가족 간에 넘치는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자녀가 7명이나 되다보니 성탄절 공연도 풍성하다. 각자 재능을 발휘해 찬양과 발레, 율동, 연주 등 각자 맡은 영역을 야무지게 소화한다. 이 선교사 가족이 특별한 것은 7명의 자녀 중 6명은 가슴으로 낳은 입양 자녀라는 점이다. 
아빠 이상훈 선교사는 “우리 가족은 물질은 없어도 가진 게 많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예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자녀는 삶의 원동력, 사역의 동역자
7남매의 활약은 비단 성탄절만이 아니다. 평소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도 악기 연주와 찬양을 도맡아 인도하고 있다.

성탄발표회 등 교회 중요 행사의 공연도 맡고 있다. 보통 일본교회에는 아이들이 많지 않지만 이 선교사가 사역하는 히로시마제일교회에는 7명의 목사 자녀들이 있어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먹는 밥맛이 꿀맛!!
아이들이 많다보니 교회가 항상 왁자지껄하고 활기차다. 때론 어린 아이들끼리 다투기도 하지만 보는 이를 빙그레 미소짓게 하는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다. 6명을 입양했다는 사실은 따로 설명듣지 않고는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분위기이다.
아직도 ‘입양아’라면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가족들은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엄마 장미숙 선교사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들을 내 품에 안은 그 순간부터 한번도 내 자식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면서 “낳은 정과 기른 정이요? 그런식으로 나누어 생각해 본적도 없다”고 말했다.

물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렵게 ‘입양아’라는 것 때문에 속상한 적이 있는지 물으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엄마 아빠가 여기 있는데 왜 그런걸 묻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의 대답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들에겐 그저 평범한 가족일 뿐이라는 것을.

이 선교사는 “가끔 사람들이 입양한 것을 대단하다고 격려해주는데 그럴 때 참 마음이 무겁다”면서 “살면서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조차 한 적 없는데 다른 분들이 각인시켜줄 때 마음이 어렵다”고 말했다.

▲ 이상훈·장미숙 선교사 부부

가족으로의 만남, 새로운 시작
 이상훈 선교사 부부의 입양은 사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작됐다.

이상훈 선교사 부부의 입양은 사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작됐다.

 청년시절 일본 오사카에서 예수전도단 DTS 훈련을 받으며 만나 결혼한 부부는 서른 살에 첫째 환희를 낳았다. 출산 후 장 선교사는 건강이 악화돼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했다. 온 몸에 감각이 없이 몸이 굳어졌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 선교사는 “아내를 살려만 주시면 우리 삶을 드리겠다고,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하겠노라 기도했다”고 회상했다.

그 사이 둘째를 임신했지만 유산하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러던 중 입양에 대한 부름을 받았다. 장미숙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제게 입양을 원하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하나님 뜻에 이끌려 우리 딸 온유를 데려왔다”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비밀입양이 많았던 시절이지만 이 선교사 부부는 당당하게 공개 입양을 했다. 어떤 아이를 입양할까 고르지도 않았다. 입양이 필요한 아이가 인도되는 대로 키우기로 마음먹고 성별도 고르지 않았다. 생후 18일째였던 온유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하나님 부름에 순종해 선교사로 헌신
아이를 키우며 장 선교사의 건강은 점차 좋아졌다. 온유가 돌이 지난 후 부부는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훈련받고 교단 선교사로 일본에 파송 받았다.

선교사 파송식 날과 장 선교사의 아버지 장례식이 겹쳤지만 눈물을 머금고 하나님 일을 우선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히로시마의 사역지는 상처투성이었다. 원폭이 터진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그 아픔이 사람들 마음에 그대로 남아 그 불안감과 분노로 목회자를 힘들게 했다.

▲ 한국어예배 시간 아이들.
장 선교사는 “너무 힘들어서 매일 기도했는데 그때 주신 말씀이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야보고서 1:27)라는 구절이었다”면서 “또 입양을 하라는 마음을 말씀으로 주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몸도 아프고, 후원도 안되는 상황이라 건강하고 똑똑하고 돈도 많은 사람들 찾아보시라고 기도했다. 1년 정도를 기도한 후에야 셋째 찬송이를 데려왔다. 그 후로 기도할 때마다 아이를 주셨다.

넷째 평화를 데려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아이를 데려오기로 하고 장애아를 신청했는데 입양기관에서 청각장애인이 낳은 아이를 보내주었다. 생후 3개월인데 심장이 안좋아 젖병도 빨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입양 후 일주일 만에 기적같이 건강이 좋아졌고, 지금은 7명 중에 가장 건강한 아이로 자랐다.

이후로도 하나님께서 계속 입양의 마음을 주셨고, 다섯째는 입양이 잘 안되는 아이로 신청해 4개월이었던 소망이가 둘째 아들이 됐다. 처음 집에 왔을 때 배밀이도 안하고 기지도 않고 울기만해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명랑하게 자라고 있다. 이후 2012년 생후 2개월이었던 초애와 승리 쌍둥이가 마지막으로 가족이 되었다.

▲ 주일예배 때 반주하고 찬양하는 아이들
자녀 신앙 위해 홈스쿨 선택
이 선교사 부부는 7명 아이들을 모두 홈스쿨로 교육하고 있다. 첫째 환희와 온유는 학교에 보냈지만 처치스쿨에서 가르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고, 이후 동생들도 처치스쿨에서 교육하고 있다. 신앙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기에 홈스쿨을 택한 것이다.

일본초등학교는 일정이 일본 신사나 절에 맞춰져 있고, 학교 행사도 주일에 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전교생이 960명쯤 되는데 크리스천은 환희와 온유 딱 2명이었기 때문에 일정을 바꿔달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신앙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이웃교회 처치스쿨에 등록하고 매일 드리는 가정예배를 아침저녁으로 늘렸다.

또 특성에 맞는 교육을 찾도록 힘쓰고 있다. 온유는 현재 발레를 배우고 있다. 집안 형편은 안되지만 발레학원과 예향선교회에서 훈련과 활동을 지원해주고 있다. 셋째 찬송이는 3D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키워줄 계획이고, 어린아이들의 재능찾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성탄절을 앞두고 오랜만에 모두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 기념으로 한컷.

식구가 많으니 기쁨도 커
일본에서 한국인 목회자로, 그것도 가난한 대가족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들은 정말 행복할까?

장 선교사는 “매일 배우며 살 수 있는 점이 행복”이라며 “아이들이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 챙겨주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사랑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매일 배운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생활은 계속 어려웠지만 정말 부족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걸 믿고 경험하는 은혜도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 초애랑 아빠랑 '사랑해~~~~'

식구가 많으니 목회 동역자가 많아진 점도 대가족의 장점으로 손꼽았다.
이 선교사는 “일본에서 사역하며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면서 동역자를 달라고 기도 했는데. 지금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면 온유가 반주하고 환희가 기타치고 아이들이 큰 소리로 찬양한다”면서 “이 아이들이 예배공동체가 되고 동역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예비하심이다”라고 말했다.

장 선교사는 “혹시 입양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결코 그 마음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고 싶다”면서 “입양은 정말 가치있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선교사 가족들은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성탄절 공연을 위해 연습이 한창이다. 온가족이 함께하는 것 자체로 특별하고 행복한 이 가족의 성탄절은 누구보다 풍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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