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부흥과 강해설교

수원교회에서 이병돈 목사가 안수기도를 하면 난치병이나 불치병도 치유되는 신유의 역사가 나타났다. 또한 방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영적 은사들도 나타나 400명이 오르내리는 교회로 성장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1년에 35회, 40회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었다.

1975년 이 목사는 서울의 은평교회의 청빙을 받았다. 부임당시 은평교회는 수원교회 교세의 3분의1 정도였으나 대도시에서 복음사역의 큰 비전을 품고 교회부흥에 매진했다. 이 목사는 부임한 주일저녁부터 1주일간 부흥집회를 인도했다.

부임부흥회를 하는 첫날부터 175명이 등록하여 교회가 새로운 힘을 얻어 부흥성장의 동력이 생겼다. 이 목사부임 전에 6~7개월 동안 강단을 맡아준 김홍순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여 부자지간처럼 좋은 관계 속에서 합심하여 교회부흥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교회부흥으로 성도가 포화상태여서 예배당의 좌석이 턱없이 부족하여 1978년과 1989년에 두 번씩이나 큰 교회당을 헐고 교단굴지의 교회당으로 더욱 크게 신축했다.

교육관과 교실 문제도 해결하고 각 부서의 활용 공간이 확보되어 각 기관과 여러 부서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균형 있게 부흥 성장시켜 나갔다. 이 목사는 매달 하루를 기도의 날로 정하여 많은 성도들과 함께 기도원에 가서 기도에 전념했다. 기도원에 다녀오면 각종 은사가 나타났다.

거듭나는 사람, 질병이 치유되는 사람, 성령체험을 하는 사람, 특별한 은혜를 받는 사람이 생기는 역사가 이어져 기도하는 교회로, 성령의 역사가 지속되어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다.

은평교회가 지역사회봉사와 연합운동을 이끌어 복음전도의 결정적인 기회를 선점하여 이를 통해서도 복음의 많은 열매를 결실했다.

개발목회 
이 목사는 다음과 같이 목회철학과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 하나님말씀의 보수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가 될수록 복음주의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둘째, 선교하는 교회다. 셋째, 나라를 지키는 교회다. 여기에는 지역사회 봉사와 유대관계를 위한 사역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지역교회들과 협조하여 삼일절과 광복절에 연합예배를 드렸다. 은평교회가 장소를 제공하고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봉사했다. 또한 지역사회봉사에 앞장섰는데, 250여 명의 환경미화원들을 초청하여 식사대접과 선물을 주며 격려하여 일간지에 보도가 될 정도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나환자촌과 자매결연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눴고, 장애인전담부서를 두어 그들을 섬겼다.
매년 장애인주일을 제정해 초청예배를 드렸는데 중증장애인들도 초청하여 정성껏 수발해줬는데 집안에서만 지내던 그들이 교인들의 따듯한 수발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게 되니 행복감에 젖어 무척 기뻐했다. 또한 보육원의 고아들과 교인과의 부모결연 맺기 등 낮고 천한 이들을 위해 오신 예수의 정신을 계승하는 사역을 ‘개발목회’라고 했다. 

1990년에 있었던 ‘1028 예수님 초청 잔치’행사는 교회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당일 참석한 사람은 1만5,000명이었다. 그날 10부예배로 드렸는데 그때 예수 믿기로 결신한 사람은 4,800명, 은평교회에 등록한 사람은 700명이었고 끝까지 교회에 정착한 성도가 480명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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