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정당한 사람, 상식적인 사람, 진실한 사람이 잘 살게 좀 못합니까? 나보고 웃긴다고요? 세상은 적당히 뒤섞여서 사는 게 좋은 거라 이 말이겠죠. 선량한 사람이 속고 살지나 않게 해주쇼. 그게 하나님 할 일 아닙니까.” “하나님, 핏대 좀 내세요…죽은 뒤에 끌어다 심판하는 게 하나님의 핏대라는 겁니까? 억울한 꼴 당하는 사람들 좀 생각해주쇼. 하나님마저 그렇게 고자세로 나오면 사람들은 누굴 믿으라는 겁니까. 하나님도 공무원입니까?”

▨… 하나님은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에서 주인공 장총찬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하신다. “하나님, 하나님도 좀 이런 건 제발 알아 두쇼. 백문이 불여일견이랬으니 한번 내려와 보시든가…. 이 봉사 같은 양반아”에 이르면 성육신의 교리 또한 난도질을 당한다. 장총찬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한마디도 주저함없이 내지른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젠 정신 좀 차려요.”

▨… 수난 이야기를 펼쳐보여 주며 ‘무력한 예수’의 모습을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개했던 이는 엔도 슈사꾸였다.(‘예수의 생애’) 그에 의하면 사랑이란 이 세상적 의미로 볼 때 무력, 무능한 것이기 때문에 수난을 당하시는 예수는 필연적으로 무력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많은 신학자들도 이미 동의한 내용이다. 무력한 하나님은 장총찬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지만 엔도 슈사꾸에게는 사랑 그 자체였다.

▨… 지난 해 제천의 참사에서는 우리교단의 두 분 하나님의 종이 화를 당하셨다. 두 분은 모두 존경받을만한 분이라고 교인들은 증언했다. 특히 젊은 종(박재용)은, 어느 신문의 보도대로, 상가교회의 가난한 목사였기에 화재가 난 사우나에서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목욕수건을 세탁해서 정리하는 ‘알바’를 했었다. 알바 후에는 곧바로 새벽제단에 무릎을 꿇었다.

▨… 그 사우나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알바생’이 왜 피하지를 못했을까. 그는 투잡의 알바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었던 탓 아닐까.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자기자신을 향해서는 ‘무익한 종’임을 선언하는 무력함으로 나타난 때문 아니었을까. 유해가스가 가득한 어둠 속에서 그는 부르짖었을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여기서 뜬금없이 장총찬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니 한 번 내려와 보세요. 심판을 위해 부르셔야 할 이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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