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축복?

이성훈 목사
역대상 4장에서 언급되는 야베스라는 이름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꽤 오래 전 출간된 브루스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웬만한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때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장 아름답고 멋있게 짓고 싶어합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이름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고통’이란 뜻을 지닌 야베스라고 하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매우 특별한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야베스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수고로이 낳았다고 한 것을 보면(대상 4:9) 추측컨대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아주 심한 산통을 하였을 수도 있고, 혹은 야베스가 태어날 때 가정에 엄청난 불행한 일이 닥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베스는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지역을 넓혀 주시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혹자는 그의 기도에 대해서 세속적일뿐 아니라 기복적이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한 번 쯤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0절에서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에서 ‘아뢰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라’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의 ‘카라’라는 표현은 ‘울부짖다’에 가까운 의미로서 절박함과 다급함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야베스는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점점 그 이름이 자기 뇌리 속에서 불길한 생각을 갖게 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고통’이라는 이름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절박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기도는 복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과도 같은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하나님을 향하여 필요한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과 복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성령께서 스쳐 지나가듯이 주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주기도문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기도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주기도문의 첫 문장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였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기도의 우선순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나를 위함’이 아닌 ‘하나님을 위함’입니다. 모든 기도의 방향과 초점도 ‘내’가 아닌 오직 ‘하나님’을 앞세우는 기도여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야베스가 고백했던 기도처럼 단지 지역을 넓히고 근심이 없게 하여 달라는 기도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지경이 넓혀지고 환난을 벗어나 근심 걱정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2018년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성결가족과 직장과 사업장에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복이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나 이 복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의 지경이 넓혀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는 영광스러운 교회의 역사로 이어지는 은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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