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영 목사
“목회가 힘들어서 모든 통신수단을 다 끊고 이제 교회를 떠나 절에 가 있으려고 합니다. 꼭 연락할 일이 있으시면 사순절로 오십시오. 사순절에 왔는데 찾지 못하시면 부활절로 오시고, 거기도 없으면 오순절로 오십시오.” 뼈 있는 웃음이다. 힘든 목회에 건조해진 마른 마음을 기경하고자 한다면 사순절로 가야한다. 사순절-부활절-오순절로 이어지는 생명의 절기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인하여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성령 안에서 교회가 경험하는 중생과 성결의 시즌이다.

그리스도의 계절에서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시발점은 사순절이다. 그 사순, 즉 40일 순례의 시작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한다. 며칠 전 드린 재의 수요일 예배 마지막에 재를 가지고 이마에 십자가 인(sealing)을 치는 순서가 있었다. 작년 종려주일에 헌화되었던 종려나무 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가지고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나와서 무릎을 꿇고 있는 내 이마에 십자가 형태의 재를 발라주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아이 입을 통해서 주신 준엄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사순절을 살아내고, 다시 그리스도인의 건강을 회복하리라는 꽉 찬 마음이 생겼다. 성도들 모두 재를 이마에 바르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도 돌아갔다.

그날 일기에다 생각나는 대로 썼다. 나는 성도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임을 잊지 말자. 자신을 과신하지 말자. 유혹에 사로잡혀 덧없는 인생 의미 없이 끝나지 않도록 하자. 몸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니, 땅에 것을 사모하지 말고 하늘의 것을 사모하자. 네 보물을 도둑 없는 하늘에 쌓아두자. 가난한 자와 함께 하자. 성령께서 감동을 따라 행하자. 금식하며 탐심으로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구제하자. 하나님이 뜻인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자. 거대담론만 이야기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복음을 내 삶 속에 살아내자. 

매년 사순절 때마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죄와 허물을 드러낸다. 하나님 앞에 연약함을 고백하며 회개를 통해서 거듭 위로부터 거듭남을 확인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사순절 내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매일 교회를 찾아와 성경을 읽고, 긴 침묵 가운데 기도한다. 세례의 언약을 다시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다. 

초대교회가 그러했듯이 우리교회도 세례후보자들과 그들을 양육해 왔던 후견인들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까지 매일 밤 교리교육과 기도에 힘썼다. 지난 1년 동안 받아왔던 세례예비자 교육의 막바지 담금질이 이 기간에 이루어진다. 우리교회 비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역사, 사중복음, ‘디다케’의 두 가지 길, 사도신경, 주의 기도, 십계명, 신구약성경개론, 그리고 세례와 성찬을 배운다. 40일 내내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또 반복해서 암기시킨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출산의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신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을 섬기듯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사순절 막바지 종려-고난주간에 이르면, 목요일에 성목요일 예배를 드린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의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나눈다. 세족식을 거행하고, 성찬으로 예배를 마친다. 성금요일 밤에는 침묵 가운데 주의 수난기사를 읽은 후, 강단에 있던 예수님을 상징하던 모든 상징물들을 걷어내고, 완전한 어둠 가운데 기도하다 각자 해산한다. 토요일은 금식한다.

사순절 내내 세 가지 적들과 싸운다. 인위적, 감정적, 감상적인 적들과 싸운다. 무엇인가를 경험하기 위해서 연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과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 속에 나를 던지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맞이하는 부활절 새벽은 언제나 고난과 승리, 죽음과 부활, 멍에와 자유의 대조를 통해서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빛을 경험하듯 부활하신 주님을 새롭게 경험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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