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과 머리털

이성훈 목사
일반적으로 우리는 삼손하면 머리털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힘은 마치 그의 머리털 때문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를 신앙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들릴라의 끊임없는 유혹으로 인해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사기 16장 16절에는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히. 티끄짜라 라프쇼 라무트)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직역하자면 “그의 영혼이 짧아져서 죽게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수명이 단축되었다는 말입니다. 삼손이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일 삼손이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들릴라의 유혹에 대해서 고민 없이 자신이 가진 힘의 비밀에 대해서 말했을 텐데 말입니다. 17절에서 삼손은 힘의 원천에 대해서 말하기 전 이렇게 말합니다.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마치 신음하듯이 말을 이어가는 모습 속에서 그가 왜 그토록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나실인이었던 삼손이 금해야 할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둘째, 죽은 시체를 멀리해야 하는 일, 셋째는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삼손은 첫째와 둘째를 범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나실인으로서 지키고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머리에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만일 삭도를 머리에 대는 일마저 범하게 된다면 그는 나실인으로서의 모든 규례를 저버리게 되어 결국에는 나실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잘려져 나갔다는 것은 그의 거룩을 포기함과 동시에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헌신된 삶의 포기를 의미했습니다. 나실인으로서의 자격 상실과 거룩의 포기는 곧 하나님의 신이 더 이상 삼손에게 머무르지 않음을 의미했으며, 이는 곧 능력 상실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삼손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 (히. 티끄짜라 라프쇼 라무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그의 번뇌는 마지막 신앙의 양심과 세상의 유혹 사이에서 갈등을 의미했습니다. 그의 고뇌는 유혹 속에서 스러져가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으로 인한 신앙 양심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삼손은 “하나님 살려 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의 도우심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 기회를 날려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미투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평생 바쳐진 나실인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나 해당됩니다.

고전 3장 16~17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우리는 어디로 끌려갈지 모릅니다.

마귀가 마음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는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살아감으로써 거룩을 꿈꾸고 거룩을 비전 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