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성결인대회’
1998년 IMF외환위기로 나라가 흔들릴 때, 총회장으로서 ‘3·25 성결인 대회’를 통해 영적각성운동을 벌였다.
1998년 3월 25일에 거행된 ‘3·25성결인대회’에는 3만여 명이 모여서 나라와 민족의 죄를 책임지는 중보적인 회개의 제단을 쌓았다.

또한 사랑실천으로 2,000명 이상의 헌혈과 18톤의 의류수집과 2억 원의 실직자 지원헌금을 전달하여 좋은 교계의 모습을 보여줬다. 회개운동에는 실천적 신앙이 뒤따랐다. 외환위기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 ‘옷 모으기 운동’, ‘헌혈운동’ 등을 병행했고 실직자들을 위한 성금기탁 등 사회적 고통을 분담했다.

이러한 3·25구국기도회는 성결교회의 정체성과 우리교단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깨우쳐주었다. 그 후로 성결인대회와 같은 큰 대회를 원만히 개최하는 노하우를 갖게 되었다.

이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이사장 재임 때에도 IMF외환위기 속에서 교단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서울신학대학교성결인의 집을 기적적으로 완공하는 데도 앞장섰다. 당시 모금된 110억 원은 지금도 모으기 쉽지 않은 큰 금액이다.

이 목사는 교단총회장상으로 선교분야 등 다수의 상과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서울특별시장상), 필리핀, 터키,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미 과테말라에도 선교하여 공로패도 받았다.

학구열과 저서
이병돈 목사는 목회에 전심전력하는 한편 목회학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놀라운 학구열을 보였다. 그는 이스라엘 성지연구원과정과 연세대학교연합신대학원과정(2년)을 수료했으며, 미국 인디아나 유니버시티에서 수업하여 석사학위(M. Div) 과정을 수료했고 미국 트리니티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박사(D. Min) 학위를 취득했다.

또 이 목사는 ‘모세오경강해’, ‘출애굽기강해’, ‘레위기강해’, ‘민수기강해’, ‘신명기강해’, ‘요한계시록강해’, ‘사도신경과 십계명강해’, ‘제자훈련’, ‘잘난 사람 못난 사람’(상권 하권), ‘하나님이 맡긴 하나님의 사역자’(자서전), ‘강해설교와 개발목회에 대한 대담’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향으로 돌아가다
 이 목사는 2005년에 은평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은퇴 후에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부흥집회, 사경회, 세미나, 수련회 등의 강사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 목사는 2008년 위암이 발병했지만 수술이나 항암치료 등을 일체 받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채 9년여 동안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2016년에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었지만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여 2016년 2월 10일에 향년 81세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 남은 시신도 연세대의료원에 기증해 의학발전과 장기가 필요한 사람을 도왔으며 유족에게 돌려주지 말고 병원의 관례대로 적절히 처리하기를 당부했다. 이 목사의 환송예배는 2월 12일에 교단장으로 은평교회에서 엄수되었다.

이 목사는 강해설교의 대가로, 개발목회의 창안자로, 말씀으로 일깨워주는 유능한 부흥강사였다. 다정다감한 품성에 영성과 지성, 미덕을 겸비한 발자취를 남긴 교계의 큰 지도자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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