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특집 인터뷰-1
"감사하며 부활의 새 삶 살아요"

▲ 사업실패로 밑바닥까지 추락했지만 절망하지 않고 신앙을 부여잡고 재기에 성공한 유평찬 장로(동산교회). 유 장로는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이불도매물류센터인 천안시 소대 '예담침구' 회장을 맡고 있다.


“하나님 은혜는 끝이 없슈~, 고난도 다 지나고 보면 그게 은혜였지,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죄다 감사할 일 뿐이유.”

국내 최대 규모의 이불도매센터 ‘예담침구’ 회장 유평찬 장로(동산교회)는 구수한 사투리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예담침구는 천안시에 위치한 이불물류센터로 직원 13명을 두고, 대지 6,611㎡(2,000평) 내 3,305㎡(1,000평) 건물에 1만 채 이상의 이불과 베갯잇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사업이 성공적이니 감사가 넘치는구나 생각했지만 막상 들여다본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고난 투성이었다. 그 모든 고통을 다 겪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감사’하고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실패 딛고 재기에 성공
배신, 사기 당했지만
축복을 예비하신
하나님 은혜라 감사

▲ 천안시에 소재한 '예담침구' 사업장에서. 예담침구 물류센터에서는 이불과 베갯잇 등 1만 점 이상 보유, 판매하고 있다.
유 장로는 평생을 개미처럼 일하며 죽을힘을 다해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철저하게 배신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평생을 손발이 부르트게 일해서 모은 전 재산을 한 순간에 다 빼앗아 갔다. 다 빼앗기고도 오히려 죄를 뒤집어쓰고 수개월 감옥살이까지 해야했다.

그를 버티게 한 힘은 ‘신앙’과 ‘가족’이었다.

충남 예산 태생인 유 장로는 어린시절 굶기 일쑤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이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는 신앙 속에서 감사하며 사셨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분’이었지만 매일 촛불 아래서 성경을 읽으셨고, 그는 그런 신앙의 기적을 보며 자랐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초등학교 졸업 직후 자전거에 플라스틱 젓가락을 싣고 예산장, 합덕장 등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다. 점점 신앙은 잊혀져갔다. 군 제대 후 신앙 없던 아내(황영희 권사)를 만나 결혼하고 교회는 주일행사처럼 출석만 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부흥회에 참석하라는데 가기 싫어서 불평하다가 아내와 참석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우리 부부는 성령을 체험했고 그때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 그 마음으로 살고 있죠.”
1978년 유 장로 부부는 ‘신앙’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리어카를 끌고 노점장사를 하는 고된 삶이었지만 매일 새벽에 몇 km씩 걸어서 새벽기도를 다니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그러다 당시 유행하던 ‘밍크이불’ B품 원단을 납품받아 테두리를 재가공해 팔면서 그의 인생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때 유 장로 4형제가 한집에 모여 살며 여자들이 만든 이불을 남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그게 ‘히트’를 쳤다. 트럭 1대로 시작한 이불판매 사업은 승승장구해서 트럭이 25대로 늘어났다. 강원도 단오제에서는 당시 15일 만에 5억 원 이상을 판매해 최고 매출 기록도 세웠다.

“이불이 얼마나 잘팔리는 지 돈버는 재미에 신이 나서 일했다”는 유 장로는 “매달 1,000만 원씩 십일조 할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련은 정점에서 찾아왔다. 성결교회 3대 신앙집안인 유 장로 형제들은 모두 경기도에 살면서 당시 독립문교회(현 한우리교회)에 등록해 다녔다. 그러나 너무 멀어서 1997년 집 근처의 새능력교회에 나가게 됐다. 이후 유 장로 주도로 종교부지를 매입했고, 성전 건축에도 앞장섰다. 열심히 목회자도 섬겼다.

그런데 믿었던 그 목사는 철저하게 성도들을 배신했다. 그 목사는 여러 죄과로 우리 교단에서 파직출교를 당했다. 설상가상 IMF가 찾아 온 그때 교회 장로와 회사 직원 등에게 약 80억 원을 사기 당하고, 2채나 있던 집도 모두 빼앗겼다. 급기야 그는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까지 가게 됐다.

“참담했죠. 하지만 난 죄가 없었기에 당당했고, 그곳에서 예배 때 특송도 하면서 하나님만 알아주시라고 기도했어요. 평안한 마음을 주신 것도 다 은혜지요.”

몇달 후 출소한 유 장로는 돈 한푼 없이 2007년 가족들을 데리고 여동생이 있던 천안으로 내려가 그 밑에서 일했다. 1년 후 사업을 인수받았는데 유 장로는 그걸 지금의 국내 최대 이불도매물류센터 ‘예담침구’로 성장시켰다. 이불 업계에서는 다 아는 유 장로만의 배짱있는 영업실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유 장로는 “고난에도 감사했더니 정말 감사할 일을 많이 주신다”면서 “예전보다 더 갑절로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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