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환 교수
“대결 역사의 종지부를 찍으러 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선언적 대화는 북한선교를 사명으로 접근하는 성결교단에 큰 도전을 던져주었다. 그는 휴전선을 넘으면서 그리고 200m를 걸어오면서 ‘왜, 이제야’ 하는 생각과 그리고 모두발언에서 ‘잃어버린 11년’이라는 말로 강조했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1989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을 지켜본 감동을 약 30년 만에 되살려 주었다. 수많은 기대와 간절함으로 바라보았고, 많은 이산가족의 한이 눈가에 스쳐 지나갔다. 정상회담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모든 국민들이 눈물로 바라보았다.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에 놀랐던 국민들이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의 사고는 이제 제2의 한반도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통일이 될까? 먼저 통일 지향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성결교회의 마지막 과제는 한반도 통일과 북한선교이다. 통일과 북한선교는 동일한 개념의 선교정책과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 통일은 선교정책의 목적이고, 북한선교는 선교정책의 목표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올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성결교회의 한반도 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한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통일 지향적 사고로 북한선교에 집중
지금까지 북으로 젖 염소를, 소떼를 그리고 물자지원을 통해 복음을 실어갔다. 때로는 퍼주기로, 친북좌파로 심지어 빨갱이로 오해를 받으면서 북한선교를 해왔다. 또 북측사람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을 때의 허전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정상회담을 통해 이 길이 열리고 있다. 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남과 북의 폭넓은 교류로 이어질 것이다. 이 길로 복음을 실어 날라야 한다. 갈등이 깊어도 간접선교보다 직접선교를 해야 한다, 지하교회를 통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간접선교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간접선교로 시작된 선교역사를 가지고 있다.

북한선교에 대해 비전과 관심 그리고 도전하는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다. 개 교회별로 북한선교를 선언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선교는 통일 지향적으로 조직 되어야 한다.

성결교단도 하나로 모여, 선택과 집중할 북한선교사역을 만들고 찾아야 한다. 여전히 성결교단의 80-90%가 북한을 그저 선교 대상일 뿐 반공주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점이 북한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통일 지향적 북한선교가 모든 갈등과 대립을 정리해 줄 것이다. 북한선교 논쟁은 종식되어야만 한다. 북한선교가 되면 통일이 될 것이고, 통일이 되면 북한선교가 되어 결과적으로 민족 복음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북한을 선교의 대상으로 봐야
1994년부터 시작된 성결교단의 북한선교가 20년이 넘었다. 활동은 북한교회재건운동, 통일기도회, 북한선교 주일 지키기, 북한선교특별위원회, 한국기독교통일연구소 그리고 개 교회별 북한 지원 사업 등이 있다. 구술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제는 교단이 나서야 한다.

먼저 북한을 바로 알고 북한선교를 해야 한다. 북한선교를 위한 생각의 틀을 변화시켜야 한다. 북한을 반공의 대상보다는 선교의 대상으로 보아야 선교가 된다.

통일에 무분별한 애국 기독교 궐기대회, 가칭 구국기도회를 앞세운 정치적 행동은 멈추어야 한다. 성조기를 든 구국기도운동이 북한선교와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을 향한 생각의 틀부터 바꾸어야 한다. 체제가 문제지, 북한동포는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남북정상의 만남은 복음 전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지금은 지하교회와 지하성도에게 공들인 노력을 넘어, 봉수교회(1988)와 칠골교회(1992)로 접근하는 조그련(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대상으로 하는 북한선교를 해야 한다. 각 나라마다 자기체제의 기독교를 가지고 있다.

미국 기독교, 독일 기독교, 중국 기독교 그리고 남한 기독교가 있다. 북한에는 북한식 교회와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교회와 기독교를 북한체제로 보는 생각의 틀을 세워야만 한다. 이때 북한이 선교의 대상으로 보여 질 것이다.

북한선교 위한 북한선교 준비해야
북한선교를 위한 구국기도회를 수십 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복음 통일’, ‘십자가의 영성’, ‘성경적 통일’, ‘회개와 기도’ 그리고 ‘구국기도회’ 등이 통일과 북한선교를 얼마나 열망했었던가를 증명해 주고 있다. 자동차 시동만 걸어 놓고 가스페달만 밟지 말고, 앞으로 가야한다.

그동안 복음과 십자가가 통일과 북한선교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실천하는 데는 많은 망설임을 주었다. 북한선교와 통일의 이해와 해석의 차이는 진, 보수기독교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 어느 정도 정리되어왔다. 지금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선교를 실천할 수 있는 물꼬가 열렸다.

선교란 모든 것을 주고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선교는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실천하는 북한선교, 정말로 하고 싶은 북한선교 그리고 해야만 하는 민족복음화의 대장정으로 북한선교를 시작해야 한다.

통일이냐, 북한선교냐의 논쟁은 소모전일 뿐이다. 지금부터 북한선교를 개 교회 사역에서 성결교단의 대통합 북한선교사역으로 재정비해야만 한다. 나아가 교단은 범교단적 통일과 북한선교 사역에 온 힘을 모을 때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타 교단은 벌써 앞서 달리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가뭄 뒤에 내리는 단비와 같다. 물길도 만들고, 농작물은 심고, 막을 물길에는 둔덕을 만들어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고자 하시는 민족복음화의 새 역사를 이루어가야 한다. 지금은 ‘통일의 개벽’을 준비해야만 하는 카이로스의 때, 절체절명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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