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조종사로 3,400시간 날아, 국내서 손꼽히는 베테랑 조종사

조종사의 꿈을 키운 소년이 있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했고 체력을 키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하늘을 날았다.

예비역 공군중장 배창식 장로(청주신흥교회·사진)는 현역시절 ‘팬텀’으로 잘 알려진 F-4D를 비롯해 F-16, F-15를 조종하던 베테랑 조종사였다. 그가 가진 3,400시간의 비행기록은 거리로 따지면 지구를 약 150바퀴 돈 셈이다.

그는 공군사관학교 21기로 임관해 2007년 8월 제대할 때까지 39년 간 공군장교로 근무했다. 최일선 전투비행단장, 공군교육사령관, 국방대학교 부총장, 공군참모차장, 공군작전사령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제대 후엔 경북항공고등학교 교장, 청와대 안보총괄점검위원,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동원과학기술대학교 항공정비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늘을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전투기 조종이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면 극한의 훈련을 견뎌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중력 가속도 훈련’은 중력의 9배를 견뎌내는 훈련이다. 전투기가 시속 2,800km로 날아가다가 급선회를 하면 중력이 9배 커지는 데 이를 견디지 못하면 의식을 잃고 추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3,400회 전투기를 타면서 무사고로 전역한 것이 배 장로에게 가장 감사한 일이다. 통계를 보면 2000년 이후 20여 대의 전투기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그는 주변의 동료, 후배들이 숱하게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봤고 지금도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2006년 우리나라 공군의 주력전투기였던 F-16 추락사고 이후 공군의 사기가 떨어져있을 당시, 공군작전사령관이었던 배 장로는 직접 F-16에 올라 50분간 지휘비행을 하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얼마 전 경북 칠곡군에서 F-15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해 후배 조종사 2명이 순직한 사건도 배 장로는 너무 안타까워 했다.

베테랑 조종사였던 그도 5번 정도 아찔한 경험을 했다. 1983년 10월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 당시 대통령 공중경호 임무가 지연되자 관제소의 착륙 지시가 늦어졌다. 연료상태가 위험 수준에 이를 때까지 비행을 계속하던 그는 관제소에 급히 비상연료 상태를 보고했다.

가까스로 예비 비행장에 착륙했을 때 연료가 완전히 바닥나면서 엔진이 꺼졌다. 30초만 하늘에서 더 지체했다면 추락 사고를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그는 하늘에서 무사히 내려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조기 전역의 유혹도 많다. 1990년대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고 민간항공사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조종사의 가치가 급상승했다. 젊은 전투기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민간항공사의 입사 제의가 잇따랐고 실제로 많은 보수에 끌려 전역을 택한 조종사도 많았다.

덜 위험하고 편하게 일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지위와 돈을 쥘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배 장로는 끝까지 공군에 남았다. 돈과 보장된 지위보다 명예로운 군인으로 남기를 원했고 후배 조종사를 키우는 등 할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군에서 가장 보람 있었을 때는 어느 공군 레이더 관제부대의 부대장으로 갔을 때다. 그가 기독교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던 관제부대 군종장교는 그가 부대장으로 오기를 날마다 기도했다. 전임부대장이 불교신자라서 부대 안에 교회를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대장으로 부임 후 산간 격오지 부대 여러 곳에 콘테이너 교회를 세웠다. 군종장교는 기도가 이뤄졌다며 감격해 했다.

“하늘에서 전투기를 조종하던 시절엔 우리나라 영공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컸지만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또한 국가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