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 선거 경험이 많은 어떤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선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선거에서 떨어지면 그것만큼 허망한 것이 없습니다.” 교단 선거라고 다르겠습니까? 하지만 어떤 선거든지 경선이면 당선자와 낙선자가 갈리기 마련입니다. 교단 안에 전설처럼 회자되는 모 목사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부총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하고 충격을 받은 그 목사님은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는 다시 출마 안 한다”라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제112년차 임원후보로 나선 모 목사님이 출마 전 모 원로목사님을 찾아 상담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선거에 실패하고 그 후유증으로 목회와 노후가 불행했던 목사님들 리스트를 쭉 열거하더랍니다.

제112년차 총회 대의원 수는 800여 명 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중 새로운 지방회장과 지방회 부회장(장로)을 제외하면 약 700여 명의 대의원이 남습니다. 그들 중 약 90%는 늘 그분이 그분이랍니다. 후보로 출마할 정도의 분들이라면 이미 대의원들에게 꽤 알려져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자신을 소개하거나 포장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혹 장로님들은 목사 후보자들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목사님들은 장로 후보들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선관위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일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왜 후보자들은 저렇게 힘들여 대의원들을 찾아다닐까요? 아니 찾아 다녀야만 할까요? 그분들은 출사표를 던진 후 총회 개회 전까지 거의 전국을 2~3회 이상 순회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관위 자료는 객관적이지만 (대의원들이 후보자를) 직접 만나야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하데. 목이 뻣뻣한지 아닌지. 그리고 떨어지면 쪽팔리니까.”

후보자들이 각 지방과 교회를 방문하게 되는 경우를 상정해 봅시다. 본인들의 수고는 차치하고라도 필연적으로 그들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선거 참모들이고 선거 전문가들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후보자들의 사람됨과 정견보다 관계 중심의 선거를 주도한다는 것입니다. 인맥, 지맥, 학맥 등. 심지어 선대의 인연까지 들먹일 만큼 교단이 좁다고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거전문가들은 선거 브로커들로 탈바꿈합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동인은 이익입니다. 그들끼리 합종연횡하는 일들도, 반목하는 일들도 다반사입니다. 후보자들은 선거의 주체가 아니라 자칫 인질로 전락합니다. 선거비용과 자리보장이 문제되는 이유입니다. 아직 우리 교단이 사적 카르텔의 공동체인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사적 구조가 해마다 심화되고 강화되었습니다.

총회장을 정점으로 한 사적 카르텔 구조가 일상이 되면 교단의 공적인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공적 시스템이 사적 카르텔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제112년차 총회를 앞둔 지금 교단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는 이유이고 ‘확증편향’의 증상이 확산되는 이유입니다. 교단 112년 역사의 민낯입니다.

교단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존립하기 위해서는 이 해묵은 사적 카르텔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공(公)을 열어야 합니다. 소위 파사현공(破私顯公)입니다.

‘공(公)’을 파자(破字)하면 ‘여덟 팔(八)’+‘사()’입니다. 이때 ‘사()’는 ‘입 구(口)’의 변형이고 ‘사사로울(私)’ 혹은 ‘자기self 사'의 고어입니다. ‘팔(八)’자는 원래 두 사물이 서로 등지거나 맞대고 있는 형태의 상형어입니다. 여기에서 ‘배반할 배(背)’와 ‘떠날 리(離)’의 의미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깰 파(破)’라는 동연적 개념으로 전이된 것입니다.

그 원래적 의미에 충실하게 ‘공(公)’을 풀이하면 ‘공(公)’은 당연히 ‘사(私)’를 깨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유에 ‘공(公)’은 ‘공(公)’을 적극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사(私)’를 깨는 방식으로서의 소극적 개념입니다. 무공현사(無公顯私)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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