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뷔통 핸드백은 한국에서 ‘3초 백’이라고 불린다. 길에 나서면 3초에 한 번씩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짝퉁 핸드백 제조업자들이 명품 핸드백의 대중화를 이끈 셈이다. …짝퉁이 진화하여 품질까지 짝퉁이 되면, 품질이 좋아서 명품이라면 짝퉁도 명품이다. 소문에 의하면 한국에서 만든 어떤 우수한 복제품은 진품과 식별이 되지 않아 파리의 본사에서 애프터서비스 차원의 수리를 해주었다고 한다.”(정연보, 초유기체 인간)

▨… ‘3초 핸드백’에 비견할 수야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 어느 길을 걸어도 이곳은 교회입니다라고 소리치는 듯한 십자가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날 수 있다. 그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토마스(R.J. Thomas)가 대동강에서 순교한 1866년을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첫해로 꼽더라도 이제 겨우 150년 남짓한데, 교회의 수만으로 선교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한다면 한국교회야말로 성공한 선교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이 땅에서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선교가 성공한 생생한 현장을 보라고 증언할 수 있을까. 교회 수와 교인 수는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고 있음에도 이 사회는 여전히 약육강식과 황금만능의 맘모니즘이 삶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뉘라서 부정할 수 있는가. 삶의 자리(문화)에 대한 변혁은 밀쳐두고 교회 수와 교인 수에만 집착하는 한국교회가 과연 성공한 선교의 상징일 수 있는가.

▨… 이곳 저곳에서 발표되는 통계마다 기독교인의 양적인 감소가 지적되고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는 모태신앙 소유자들의 교회 이탈이 우려할 만큼 증가하고 있음도 밝혔다.(한국성결신문 제1144호) 그와 함께 소위 ‘가나안 교인’의 수는 증가일로 추세라고 한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이 추세에는 행여 라도 무슨 핸드백처럼 짝퉁 바람에 질린 결과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무진의 안개처럼 스멀대고 있다.

▨… “구도자는 늘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대한 불안한 동거를 인지하면서 진리를 향해 방황하고 배회하는 가위눌린 영혼이 아니겠느냐”는 엘리아데(M. Eliade)의 말(이상철, 죽은 신의 인문학)을 목사들은 어느 선까지 받아들이고 있을까. 엘리아데의 말은 어쩌면 진짜 뺨치는 짝퉁이라도 되려고 기를 쓸 뿐, 가위눌린 영혼이 되는 것만은 사양하려하는 이 땅의 목사들을 향한 일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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