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청을 안팎으로 칠하라

이성훈 목사
흔히 방주를 건조할 때 노아가 사용하였던 역청은 오늘날의  ‘아스팔트’였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러나 아스팔트가 석유나 석탄에서 비롯되는 추출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역청이 ‘아스팔트’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과학회에서는 ‘역청’이 소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송진과 소나무를 태워 얻을 수 있는 숯의 혼합물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개연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그 당시 ‘역청’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역청이 과연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 보다는 역청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역청’이란 히브리어의 ‘코페르’를 번역한 말입니다. ‘코페르’라고 하는 말은 ‘카파르’와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독자들은 ‘카파르’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카파르’에 대해서 직접적인 해석을 뒤로 하겠습니다. 자칫 선입견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파르’에 대한 해석보다는 ‘카파르’에 대한 뉘앙스를 말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방주에 ‘코페르’를 칠하라고 하셨을 때 ‘코페르’의 기능이 무엇이었을까요? ‘코페르’(=‘역청’ 창 6:14)의 기능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방주에 바닷물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이었습니다.

‘역청’(히. 코페르 창 6:14)이 무엇이었느냐 보다 ‘역청’ 기능을 생각하게 하는데 ‘코페르’(‘역청’)란 어떤 사물이 본래의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으로부터 막는 역할을 하는 대상을 일컬어 ‘코페르’라고 말합니다.

방주에서는 방주의 본래의 기능인 물에 뜨는데 치명적인 해가 될 수 있는 누수현상을 막기 위한 대상을 의미합니다. 정리하자면 ‘코페르’란 ‘어떤 물건이 가지는 고유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6장의 방주에서 ‘코페르’는 ‘역청’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역청으로 칠하라”에서 ‘칠하라’라는 말 역시 히브리어로 ‘카파르’라고 표현한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앞에서 ‘역청’(‘코페르’)을 ‘어떤 물건이 본래의 목적에서 그 목적을 훼손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막아내는 역할’이라고 정의했다면, 역청과 동일한 어근을 가지는 ‘카파르’는 동사로서 “어떤 물건이 본래의 목적에서 그 목적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가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역청을 그 안팎으로 칠하라” (창 6:14)는 말은 “방주가 본래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게 하는 것을 가지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것’(‘역청’, 히. ‘코페르’)을 사용하여 방주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라(‘칠하라’, 히. 카파르)”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방주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도구’를 가지고 ‘훼손되지 않게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지난 호에서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예표론입니다. 구약성경의 많은 내용들이 어떤 것을 예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역청이야기에서 적용이 됩니다.

“역청으로 칠하라”는 것은 하나의 예고편이 될 수 있으며, 당연히 예고편이 의미하는 본편을 예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물건이 고유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역청’의 본편은 무엇이며, 또한 ‘역청’을 가지고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그 행위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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