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미래’에 대한 실천신학적 해설

실천신학은 항상 희망을 전제로 한다. 본래 실천신학이 교회를 기반으로 한 교회의 학문이고 교회를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본질과 목적에서 스스로 이탈해 있거나 외부적인 강압에 의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순간에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현재를 어둡게 하는 어려움들이 일시적인 장애가 될 수는 있지만 결코 교회를 이길 수는 없다.

실천신학은 이 희망의 주체이신 주님을 선포하고 그분을 높이 받들어 섬기는 제반 활동의 원리와 실제를 다룬다.

이런 의미에서 제112차 교단 총회가   ‘희망찬 미래’라는 기치를 걸고 교단과 교회에 희망을 불어넣으려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책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가능하면 교단의 많은 구성원들이 이 희망을 함께 노래하고 지속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조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총회장을 비롯해 소수의 사람들만이 외치는 일회성의 구호, 길어야 1년 수명의 정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교회는 유기체이지 조직체가 아니다. 교회의 교회다움은 얼마나 조직이 되어 있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유기적인 특성이 살아 있느냐에 있다. 왜냐하면 조직은 직위와 의무라는 경직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유기체는 상호 협력하고 상호 책임지는 공동체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나의 조직은 정책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장애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 교단 구성원 모두가 희망을 말하고 계속해서 희망찬 미래를 열어갈 조직을 만들어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때이다.

개인의 희망이 아니라 공동체의 희망은 기획에서부터 실행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성을 지닐수록 더 역동성이 생긴다. 그것이 너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결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고 주도하며 열어나갈 ‘희망찬 미래’를 위한 몇 가지 내용을 점검해 본다.

먼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총회의 리더십과 정책 제안자의 공동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총회의 장단기 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그룹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총회 리더십이 그것을 실행하는 하드웨어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정착되면 교단과 교회의 미래를 위한 훌륭한 정책들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총회장이 교단을 대표하면서도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구상하는데 전체 구성원들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장려되어야 한다. 교단의 미래 구상이 공인된 다수를 통해 오랜 시간을 두고 기획된 것일 때 리더십의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 안에서 총회장은 교단의 새로운 발전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단이 공인한 그룹에서 나온 발전안을 실행해 나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구체화되면 총회는 교단 구성원들이 함께 꾼 꿈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가게 될 것이고 총회장은 업적주의의 분담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이 자리를 잡게 되면 교단 구성원들의 결속력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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