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에는 식욕도 웃음도 사라진다. 그럴 땐 공포영화 감상이 피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번득이는 허연 이빨 사이로 피가 줄줄 흐르는 흡혈귀가 출몰하는 영화정도면 금방 등골이 서늘해질 것이다. 

얼마 전, 공포영화를 방불케 하는 끔직한 범죄가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났다. 사건의 한 가운데 노인들이 서 있다는 데 충격이 더했다.

경북 봉화에서 발생한 엽총 살인 사건은 77세 노인이 공무원 2명을 쏴 죽이고 주민 한 사람에게 총상을 입혔다. 그 나이에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택한 것은 산골 물처럼 맑고 깨끗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여전히 욕심만 가득해 자기 이득에 비협조하는 이웃에게는 원한의 장벽을 높이 쌓고 가슴속에 복수의 불덩이를 키웠다.

강원도 영월에선 60~80대 노인 7명이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20대 지적장애 처녀를 성폭행한 일이 밝혀졌다. 불과 2~3세 정도의 정신연령 밖에 안 되는 장애 여성을 5년 동안 동네 노인들이 상습적으로 욕구충족의 도구로 삼았다니 금수가 따로 없다. 노인들 범죄행위는 수그러들어야 할 본능적 욕망이 여전히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데 원인이 있다.

이런 노인 범죄는 예견되던 일이기도하다. 고령화가 빨리 온 일본에선 이미 30여 년 전부터 비슷한 노인 범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무서움으로 다가온다.

며칠 전 모 일간지에 ‘최근 5년간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65세 이상 노인이 연평균 24%씩 증가해 같은 기간 노인인구 증가율(연 평균 4.2%)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는 기사가 보도됐다.

어릴 때 동네 어르신을 길에서 만나면 괜히 무서웠다. 또 무슨 훈계나 꾸지람을 하실까 걱정되어서였다. 돌아보면 그 어른들 덕분에 내가 이만큼이나마 사람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 어르신들은 예절과 도리, 이웃 돌봄에 본을 보이시며 젊은이들을 바르게 지도하셨다.

동네 질서와 평화가 그 어르신들이 계셔서 가능했다. 어떤 갈등이나 분쟁을 조정하고 봉합함에 있어서 어르신들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 분들은 마을을 이끌어가는 정신적 기둥이었다. 무서웠으나 존경 받던 어르신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치가 떨리고 소름 끼치는 늙은이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으로 변한 현실이 서글프다.

노인들은 절제하고 통제하는 정신적 동력이 떨어져 자기관리가 부실하나 자신들은 그걸 모른다.

그리스 신화이야기다.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한 초기 그리스 문화인 미노아 문명이 쇠퇴하자 크레타 섬의 만능 기술자인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탈출을 계획하고 새들의 날개를 모아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었다. 다이달로스는 그 날개를 아들 양어깨에 달아주며  당부했다.

“너무 높이 오르면 태양열로 날개가 녹아내릴 테니 조심해라.”

그러나 아들 이카로스는 높이 날으는 맛에 빠져 한 없이 솟아올라 태양에 가까워졌고 밀랍이 녹는 바람에 순간에 날개가 떨어져 곤두박질치면서야 아버지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욕망의 날개를 펴 끝없이 오르려는 노인들이 어느 사회, 어느 분야엔들 없으랴. 그 날개가 밀랍인 것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욕망의 불길을 따라 날아 오르다가 곤두박질하는 노인들의 추한 모습을 볼 때마다 세상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제는 모든 것 내려놓고 지는 해처럼 서쪽하늘이나 아름답게 물들이며 고향 돌아갈 준비를 차분히 함이 백번 현명한 자세일 것 같다.

“어르신들! 왜 이러십니까. 자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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