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굉필이 어머니에게 보내려고 준비한 꿩을 고양이가 잡아먹어 버리자 그 책임을 맡았던 계집종을 크게 꾸짖었다. 그 꾸짖음이 지나치다고 판단한 제자 조광조가 아뢰었다. “부모를 봉양하시는 마음은 간절하시나 군자의 말은 기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좁은 소견에 문득 의문이 들어 감히 여쭙습니다.” 김굉필이 깨닫고 대답하였다. “나도 방금 뉘우치고 있었는데 네가 지적하니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럽다. 나의 단점을 지적했으니 네가 나의 스승이다.”

▨… 김굉필이나 조광조쯤 되는 그릇들이니 제자가 감히 스승의 허물을 들추고 그 드러난 허물을 부끄러워하며 제자를 향해 네가 나의 스승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나의 장점을 칭찬하기 보다는 단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고 선인들은 늘 일러주었다. 뉘라서 그 사실을 모를까. 알면서도 범인들은 단점을 지적받으면 발끈하기부터 먼저 한다.

▨… 정신분석학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쳐 도저히 밝힐 수 없던 병인을 찾아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그러나 자신의 자제력을 끊임없이 무너뜨렸던 두 가지 욕구에 대한 치료법은 끝내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명성에 대한 갈구와 담배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큰 사회적 명성을 얻었음에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실망하고 구강암으로 32번이나 수술을 받으면서도 담배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

▨… 프로이트 전기를 쓴 작가 피터 게이의 증언에 의하면 “프로이트의 삶은 자제력을 위한 그리고 추측에 근거한 충동과 분노를 억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이었다.” 그럼에도 프로이트는 사회적 명성을 얻으려는 집착과 흡연욕구에 대한 자제력 발휘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 실패가 안타까웠을까, 훗날 ‘자기절제사회’의 저자 대니얼 액스트는 자제력을 말했던 프로이트를 향해, “프로이트 씨 너나 잘하세요”라고 살짝 비틀었다.

▨… 세월이 하수상 해진 탓일까. ‘네가 내 스승이다’라고 하는 마음은 깡그리 사라지고 ‘너나 잘 하세요’란 마음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김굉필이 자신의 스승 김종직이 나라의 중직에 임용되자 시 한 수를 지어 보냈다. “…난초도 속된 것을 좇아 결국 변한다면 어느 누가 소는 밭을 갈고 말은 사람이 타는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아직 성결교회에는 강단의 설교자를 향해   ‘너나 잘 하세요’하는 이는 없으니 그 성결인들이 설교자의 스승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