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단 순교지 다섯 곳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서울 아현교회, 논산 병촌교회, 익산 두암교회를 거쳐 신안군 증도면에 있는 문준경순교기념관과 임자진리교회가 방문 대상지였습니다.

서울 아현교회는 옛 서울신학교가 있던 자리입니다. 6.25전쟁 때 박현명 이건 목사 등 이곳 교수들이 납북되어 순교의 제물이 되었지요. 병촌교회와 두암교회, 그리고 문준경 전도사도 그 전쟁에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었고, 이튿날 방문한 임자진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6.25전쟁은 교단에 큰 희생을 강요한 셈이 됩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순교의 피를 의연히 흘림으로써 참 신앙인의 본을 보였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성결교회문화선교회에서 주관한 이 행사엔 성결교의 역사와 문화, 즉 바른 정신과 참 신앙을 계승·발전 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종무 류제하 백수복 목사님 등 원로 문필가들부터 젊은 교회 사가들까지, 이들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성결교회의 미래를 밝게 만듭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는 순교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17세기 기독교가 들어온 뒤 순교의 피로 다져진 믿음의 역사입니다. 봉건적 유교 문화와 충돌해 빚어진 권력에 의한 탄압을 ‘~박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신유(辛酉), 병인(丙寅) 기해(己亥) 박해 등은 피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개신교 130년 역사에서의 순교는 이데올로기와의 충돌 성격이 짙습니다. 1910년 한일병탄 뒤 일제로부터의 탄압은 민족 이데올로기의 마찰에서 빚어졌습니다. 물론 그 배경은 하나님 유일 신앙입니다. 일제 천황이냐 아니면 하나님이냐의 양자택일이 앞에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동방요배와 신사참배가 일제의 지배 도구였습니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 시대엔 첨예한 이념의 대립이 순교를 강요했습니다. 6.25전쟁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기독교에 남겼습니다. 성결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울신학교 교수들이 잡혀가 납북되고 병촌교회 66명, 두암교회 23명, 임자진리교회 48명 등 많은 성도들이 순교의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특히 임자진리교회를 비롯해 신안군 일대의 교회엔 문준경 전도사가 뿌린 복음의 씨가 순교로 열매 맺었습니다. 하나님과 이데올로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에서 하나님 쪽을 택한 백성들이 지엄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순교는 순교적 삶을 산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연한 순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가 증거합니다.

이번 한국성결교문화선교회에서 순교지를 방문한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으로 지킨 신앙을 본받자는 운동의 일환입니다. 운동(movement)은 개인을 넘어 집단적인 움직임을 말합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일정 기간 지속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정신에 더해 믿음의 확신까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결교 순교지를 둘러보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관계 되는 개교회의 노력뿐 아니라 교단 차원의 지원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교를 개교회나 지역에 제한시키면 의미가 맥없이 저락되고 맙니다. 순교의 거룩한 흔적은 전체 교단 차원에서 관리·운영되고 교육되어야 합니다. 순교는 모든 신앙인이 이어받아야 할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믿음을 죽음과 바꾼 것을 말합니다. 순교지를 방문해서 믿음의 선진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그 어떤 학습보다 신앙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순교의 자세로 살다가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서 생을 마친 요한 사도를 그리면서 순교 영성을 숙고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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