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일교차가 심해 아침엔 긴소매, 낮엔 반팔을 입는다. 그래도 한낮 햇살은 여름처럼 따갑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지난 여름 무더위에 어찌나 혼이 났던지 이 가을이 무척 반갑다. 

가을엔 농산물 택배가 빈번히 현관 앞에 놓인다. 그것들 모두 무게가 있어 끌어들이느라 두어 차례 허리 고장을 겪고 나서는 가을맞이하기가 은근히 두렵기도 하다.

순무김치의 알싸한 향이 좋아 작년 김장철에도 순무를 사러 강화에 갔었다. 무 한 자루를 사서 차에 옮기려 번쩍 드는 순간 허리가 뻐근하면서 시큰거렸다. 허리병이 도진 것이다.

다리만 튼튼하면 걸을 수 있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두 팔이 받쳐만 주면 몸통이 자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 두 손만 성하면 양말을 신고 벗는 건 ‘식은 죽 먹기’ 라는 생각은 허리 고장 나 본 사람이라야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된다. 허리 고장이 일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침 맞고 물리치료를 받으면 회복되던 경험이 그나마 나의 불안함을 덜어 주었다. 마침 큰길가에 6개월 전 개원한  한방병원이 생각나 어기적거리며 찾아갔다. 병상에 엎드린 채 물리치료를 받고 부황을 뜨고 반듯하게 누워 침을 맞느라 40분이나 걸렸다. 사십대 중반쯤이나 되었을까? 해맑은 얼굴의 여의사가 침을 놓으며 설명했다.

“노폐물이 쌓여서 그렇습니다. 젊을 때는 땀이나 대소변으로 노폐물을 원활하게 배출하는데 노인은 그 기능이 약해져 이런 현상이 생깁니다. 며칠 치료 받으시면 괜찮아집니다.”

1일분 가루약 봉투를 받아들고 병원 문을 나섰다. 허리가 부드럽고 걷기가 훨씬 편했다. 노폐물이 절반쯤은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의사가 설명할 때는 반신반의 했었는데 ‘노폐물’이란 단어가 귓가에서 다시 맴돌았다.

집에 와 사전을 펼쳐 ‘노폐물’을 찾아보니 ‘1. 낡아서 쓸모없게 된 물건 2. 생체 안에서 물질 대사의 결과로 생겨 몸 밖으로 배출되는 물질’이라 적혀있었다. 쓰레기, 찌꺼기, 침전된 불순물, 녹슨 부식 따위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출근하듯 아침마다 그 병원에 갔다. 치료는 내내 같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1주일을 다닌 후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무거운 걸 들어봐도 허리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침술의 신비한 효과를 경험한 뒤에 신선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 안에 또 다른 노폐물은 없을까?”

낡아 버걱버걱하는 몸뚱이 보존에만 올인하던 그동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아침 먹곤 배낭을 메고 산을 타거나 탁구장에서 맴돌거나 같은 취미의 문우들과 어울리다 보면 한 주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느라 기도와 예배, 말씀묵상엔 한없이 게으름을 피웠다.

내가 목사인지 ‘날라리’인지 아리송하다. 때론 이런 삶이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건강해야 아내, 자식, 이웃에게 짐되지 않는 거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도 않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냈다.

현실에만 초점을 맞춰 사느라 지금 내 영혼이 찌들고 때가 묻어 있음을 잊고 있을지 모른다. 내 영이 빨갛게 녹슬어 부식되고 온갖 찌꺼기와 쓰레기로 뒤덮여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육체와 달리 영혼의 허리병은 자각증상이 없어 심각한 위기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흐르는 맑은 물에도 이끼가 생기는데 세속의 탁한 물결 속에서 내 양심은 얼마나 미끌미끌한 불순물에 덮였을지, 아집과 경직된 사고의 틀 안에 침전된 불순물은 얼마나 많을지, 이 가을이 우울함으로 다가온다. 거짓, 허욕, 교만, 미움, 시기 이런 영혼의 노폐물들을 씻어내어 파란 가을 하늘처럼 티 없이 맑은 내 영혼을 가꾸고 싶은데, 주님! 날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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