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산 장로
오늘도 아침의 시간 청명한 날씨에 햇살을 받으며 드높은 하늘에는 하얀 솜구름이 다양한 모양으로 수놓아 장식하니 아름답기만 하구나!

옷자락 속으로 스며드는 가을의 공기는 제법 삽상(颯爽)하기에 거룩한 주일 아침 나의 발걸음이 가볍게 교회로 옮겨졌다.

흘러간 세월 새삼스럽게 8.15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어서 6.25의 시련 참사 속에서 보릿고개 그 옛날 유소년 시절엔 풍요로운 가을의 냄새마저 없었던 것일까? 옛 고향의 영상에는 우리의 가슴이 시리기만 하는구나!

그래도 기나긴 세월에 가을 맺음들을 잉태하면서 고뇌의 산고를 포용하며 형상화로 이어지는 수많은 편린들이 뇌리로 스쳐만 간다. 하나둘씩 떨어지며 자기들 스스로 이별하고 떨어져 가는 낙엽들 지순에 따른 순조로운 심정이 기도한 것이다.

우리들의 심정도 낙엽처럼 털고 가야할 때 그것들 아니, 모든 것을 떨치고 가야만 하는 이별은 가치가 있는 삶의 필연적 결단인 것이다. 이 세상 세월 속에 인생사는 다사다난한 가운데서 힘들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눈물로 기도하는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자기를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허물임에도 스스로 고깝게 여겨지는 허상이 내숭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자기 스스로 꾸미고 있던 겉치레들의 이별을 고하면서 고마움을 모른 사람은 비록 자신을 키워준 밑그루가 앙상하게 뻗은 나무가 될지라도 엄동설한의 인고에서 새 생명으로 탄생의 기다림이 있기에 낙엽들은 기꺼이 이별을 하는구나!

한 잎의 보잘 것 없는 낙엽일지라도 행인들 발에 채이고 밟히는 낙엽일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그도 엄연히 생명이 있다고 보아주는 것이 어떠할지!

그들 낙엽이 찬란했던 단풍이 비로 시들어 떨어지는 조각이 될지라도 한줌의 부토가 되어 새봄을 기다리는 연단의 고통인 것이다. 그래서 새 생명 창조의 온몸으로 희생하면서 결국은 몸 바쳐 썩어지는 부엽토로 또 다른 생명의 원천으로 헌신함이 있기에 결과는 생명력을 잃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훈장으로 산화되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을은 생동하는 낙엽들만이 틀림없이 받아드리는 엄연한 만추이어라!

자신의 소소한 많은 것들과 이별하는 계절이기에 새로운 희망을 기대해보는 그들 낙엽들 만의 경건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만추 결실의 풍요로움도 단풍의 아름다움도 모두 떨쳐 보낼 때는 우리들은 말없이 원없이 보내주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처럼 만추는 떠나보냄이 그토록 아름답고 새봄에 새생명으로 솟아남이 더욱 축복임을 온몸으로 나타나면서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곳에서 우리네 인생도 이 세상 잠시나마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를 가지고 내일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설계하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 안에서 소중한 삶을 이루리라 소원하고 싶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지금 우리가 세상을 생각하며 가지고 있는 돌들이 너무나도 무겁지 않은가? 망설이고 주저하지 마시고 내려놓고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시기 바란다. 거기에는 새로움이 낙엽의 생애처럼 창조되는 것이 아니겠나? 우리들 모두가 다함께 세상 고초를 이기면서, 낙엽의 생애를 되새기면서, 우리네 인생 자연을 사랑하며 감사하며 나가시기 바란다. 낙엽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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