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감사하라”

성창용 목사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감사에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을 갖게 되면 전에는 없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깊어질수록 입으로 많은 감사를 하게 됩니다.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시고 그분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고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니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지 않게 느껴지는 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는다면 또한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면서, 일 년의 삶을 지켜 주셨고, 올해도 풍년을 맞이할 수 있는 은혜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한 해 동안 사건과 사고도 많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시간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면서 추수에 대한 감사뿐만이 아니라, 1년을 돌아보면서 물질로 감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고침 받은 열명의 나병환자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감사하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을 때, 주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단 한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사실은 사람들이 은혜 받는 것이 열이라면 감사는 하나 정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을 정하고 교회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함께 감사를 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 철학의 대가이며, 철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라고 말할수 있는 플라톤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훌륭한 이름을 남기게 된 것도 그의 마음에는 항상 몇가지의 감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 둘째는 그리스라는 문명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 셋째는 소크라테스같은 훌륭한 선생을 만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기독교인도 아닌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기에 그는 복을 받은 사람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감사가 중요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면서, 감사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감사는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바로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불평과 원망이 많이 나옵니다. 이 불평과 원망의 요소가 감사의 싹을 짓밟습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샤머니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이 잘 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좋아 합니다. 그러나 일이 잘 안되고 힘들고 어려우면 짜증을 부리고, 믿어도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무엇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하나님 탓을 하고, 교회를 탓하고, 주의 종들을 탓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미신이고 우상입니다. 신앙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부지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욥과 같이 말입니다.

감사절의 유래도 바로 1620년 청교도들이 배를 타고 프리마우스에 도착하여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해에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짖고 첫 수확을 했을때 너무나도 감격하여 이 신앙의 자유의 나라에서 그냥 먹을수가 없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여 이웃들을 초청했습니다. 농사를 가르쳐주고, 도와준 인디언추장 메사 쑈이트라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대서양을 건너오면서 죽은 동료들의 무덤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감사를 아는 나라이고, 조상들부터 감사할줄 아는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나라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감사는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아무나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신다면 여러분들은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이미 축복 받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시골인 미시시피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6세 때 위스콘신주 밀워키로 이주하여 자라온 그녀는 어린 시절 상당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9살에 사촌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14살에 미혼모가 되었고, 그녀의 아들이 2주 후에 죽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생부를 통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교회를 다니면서 결심하기를 내가 평생에 하루 다섯가지씩 감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노트에 적었습니다. 그녀의 감사는 너무나 소박한 감사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하는 것에 감사하고, 점심때 동료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는것에 감사하고, 오후에 잠깐 짬을 내어 좋은 책을 읽었을 때, 감동을 받게 되니 이런 책을 쓴 작가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석양을 바라보며 붉게 물든 하늘 그 아름다움에 감사했습니다. 이 감사가 그녀를 풍성하게 했고, 그를 복되게 한 것입니다. 

셋째로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불러옵니다. 확실히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감사하는 곳에는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불평꺼리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감사의 조건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데 지금까지 감사하던 것들 보다 월등한 감사의 조건을 점점 더 많게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드린 감사의 시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언약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법궤라고도 불렀습니다. 그 속에는 아론의 싹이 났던 지팡이와 십계명 돌비와 만나가 든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적인 권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 그 언약궤가 무려 70여 년 동안 변방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놓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감격했습니다.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때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대상 16:34~36)

다윗은 참 기막힌 인생을 살았습니다. 초라한 목동으로 시작하여 골리앗을 이기고 사울의 칼날 아래에서 보호하심을 입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 기적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시켜 놓고 나서 이 감격의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감사가 넘치는 삶을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다윗은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기에 이렇게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나머지 인생도 감사하게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해서 지금까지도 다윗은 존경받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더 감사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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