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변증콘퍼런스가 올해로 7년째 열렸다. 그동안 기독교변증콘퍼런스는 척박한 한국교회의 변증(辨證) 환경 속에서 기독교 진리를 설명하고 변증하는 데 공헌했다. 과학이 신봉되고 무신론이 팽배한 오늘날 교회가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설명하고 오해에 대해 해명하고 변증하는 것은 선택 아닌 필수가 됐다. 

변증은 초대교회부터 시작됐다. 당시 교인들은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했는데 비기독교 사회에서는 이를 식인 풍습이라며 오해했다. 또 형제, 자매라는 표현도 근친상간을 한다며 비판했다. 이 때문에 기독교를 설명할 필요성이 생겼다.

교회 역사에서는 이단이 등장할 때마다 변증을 통해 기독교 신학을 정립했다. 오늘날도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등 이단들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고, 비신자들은 과학을 앞세워 복음에 대해 귀를 닫고 있다. 이런 때일 수록 변증을 통해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이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기독교는 무신론의 주장에 대해 변증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물론 극단적인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변증에도 좀처럼 바뀌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이 시대의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변증해야할 의무가 있다. 변증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납득시키는데 좋은 선교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계를 향한 변증도 꼭 필요하다. 현대과학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학과 무조건 대립만 해선 안 된다. 서로 상생하는,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종교는 과학이 갈 길을 제시할 수 있고, 과학은 종교의 신앙을 확증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과학계 또한 진화론에 대한 교회의 지적에 대해 ‘종교가 과학을 간섭하려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다는 식으로 대립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진화론만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해 왔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진화론의 허구성도 밝혀주고 있다.

현재로서는 생물학적, 화학적 증거들이 모든 생명체가 자연 선택의 진화론으로 생겨났다는 것을 만족할 만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현상의 원리와 질서를 설명하기 위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진정한 과학도의 자세가 아닌가.

물질과 에너지의 자연주의적 관점만이 과학이고 비자연주의적 설명은 과학적 증거의 유무에 상관없이 비과학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발전하는 과학의 특성과 맞지 않다. 기독교도 우리의 변증이 과학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 증거로만 말하고, 주류 과학계가 인정할 수 있도록 과학적 방법론에 변증의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기독교 변증을 위해서는 논쟁보다 비신자들의 과학적 연구와 성과를 독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신자들이 예수의 동정녀 탄생, 부활 등과 같은 일을 이해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억지로 기독교 진리를 강요하기보다 과학인들의 의견을 듣고 연구를 격려하는 포용적 자세를 보이면 상호작용을 일으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상호 접촉점을 찾은 후에 비신자들의 견해가 실제로는 비과학적이며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제 변증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교회사역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도 변증은 꼭 필요하다. 가장 확실한 변증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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