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문제는 윤리적 이슈를 넘어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교리적 문제다. 즉, 기독교 입장에선 생존이 걸린 절체절명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양심·사상·표현의 자유를 이용해 비판하고 교회 내 유입을 저지한다.

그러나 동성애 옹호·조장론자들이 동성애를 비판하는 성도들을 광신적이고 편협한 독단론자, 증오에 찬 인종주의자와 같은 반열의 사람들처럼 몰아가 표현의 자유를 막으려 한다. 마치 대화가 안 되는 극우인 것처럼 인식한다. 그리고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반인권의 대결로 몰아간다. 실상은 동성애를 하고자하는 부도덕한 행복추구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에 인권 평등논리를 뒤죽박죽 섞어놓은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표현규제로 성도의 입 틀어막기
이런 상황에서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나고 있다. 가짜뉴스 ‘오명’을 뒤집어씌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까지 나타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표현의 자유를 절대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가짜뉴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며 우왕좌왕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인권 감성팔이들은 항문성교, 집단 난교, 다자성애를 섹슈얼리티로 포장하는 것은 ‘고상한’ 표현의 자유이고, 현행법과 도덕에 근거해 비판하면 ‘형편없는’ 가짜뉴스, 혐오표현처럼 몰아간다.

혐오표현은 각국의 역사적 경험이나 사회적 배경에 따라 그 개념이 달라진다. 외국에서 동성애 비판을 혐오라고 규정했다고 해서 한국사회에서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서구사회가 권리 중 하나로 인정했다고 총기소지, 수간까지 마구잡이로 받아들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도 동성애, 이슬람, 이단 세력은 ‘정치적 올바름’의 규범 속 가짜 인권, 가짜 혐오, 가짜 소수자 논리를 앞세워 감성적인 사례를 앞세워 혐오표현 규제논리를 한국사회에 유포시키고 있다. 이 같은 유포행위가 한국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도 하지 못한 채 감성적이고 순진한, ‘나이브’(naive)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정말 동성애, 이단, 종북사상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가짜뉴스, 혐오표현이라는 딱지를 붙여 제한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부도덕한 동성애 행위, 반사회 종교집단의 교리, 주체사상을 비판하는 행위보다 더욱 우월한 가치가 있음을 당당하게 제시하면 된다.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동성애를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인간적인 선이 무엇인지, 한국사회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분명하게 밝히면 된다.

가짜뉴스 혐오표현 프레임 = 내로남불
안타깝게도 동성 간 성행위와 이단, 과격 이슬람 사상은 국가안전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질서유지는 고사하고 공공복리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부도덕한 성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이,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신도들이, 대한민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는 과격 무슬림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옥죄겠다는 것이다. 사익을 보호한다며 공익을 제한하겠다는 말이다. 반대할 기회를 빼앗고 싫어할 자유마저 박탈하겠다는 말이다. 국가권력이 정치적 표현을 하는 개인을 위협하겠다는 말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더 이상 가짜뉴스, 혐오, 종교편향 같은 잘못된 용어전략에 휘말리거나 선동당해선 안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경멸하시는 부도덕한 성행위의 물결에서 다음세대를 지켜야 한다. 신앙의 자유, 전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혐오표현규제법, 종교차별금지법,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으로 정신적 자유·표현·양심·종교·학문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 앞에 이론적으로 중무장하고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신앙은 이런 위기상황 때 증명하라고 있는 것이다.  (에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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