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울린다. 올해도 한국구세군은 지난 11월 30일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전국적인 모금에 들어갔다.

자선냄비가 소외된 이웃을 위해 거리에서 모금 운동을 벌여 온지 어느덧 90년이 되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이웃을 향한 따듯한 마음을 일깨우는 자선냄비는 오늘날 나눔과 이웃사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난파한 배의 생존자들을 위해 구세군 조지프 맥피 사관이 거리 모금을 한 게 출발점이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처음으로 자선냄비 거리 모금을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춥기만 했던 일제식민 시대에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이고, 겨울에 난방을 할 수 있는 장작이 없어 추위에 떨고 있는 불우한 이웃의 아픔을 마주한 선교사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거리로 나간 것이다. 그렇게 모아진 모금액은 838원 67전으로 130여 명의 걸인들에게 국과 밥을 제공하고 가난한 가정에 쌀과 장작을 나눠주었다.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서 나눔을 실천하게 한다. 현대의 전문적인 모금 기법에 비하면 시대에 뒤처져 보일 수 있지만 90년이 지난 오늘까지 거리 모금은 변함없다. 그것은 가난하게 살다가 고통 받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의 가장 낮은 곳, 바로 가난한 삶의 현장, 아픔의 현장에 있는 이웃과 함께 위해서 일 것이다. 

지금은 계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 추위마저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이웃의 처지는 어떨지 한번 쯤 돌아볼 때이다. 경제가 성장한 오늘날에도 굶주리고 병들어 아파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실업률로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불우이웃이 적잖다. 실직자와 노숙자는 물론 홀몸노인과 저소득층 등 어려운 사람들은 따뜻한 온기를 간절히 원하며 추위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어려움과 고통을 나누며  빛을 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없는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함께 살아가는 길이 나눔임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다.

서민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넉넉하지 못하지만 구세군 봉사자들이 빨간색 자선냄비를 세워놓고 종을 흔들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보다 어려운 형편의 이웃을 생각하며 지갑을 열어왔다. 구세군의 빨간 냄비가 불황일 때마다 더욱 뜨겁게 달궈지곤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소액·익명의 기부자들이 ‘작은 기적’, 길 위의 희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름 없는 이들의 작은 손길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희망의 큰 불길을 이루어 낸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크고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몇 십억을 기부해야만, 수십 년 간 모은 전 재산을 내놓아야만 나눔이 아니다. 작아도 꾸준한 지원이 더 소중하다. 무엇보다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은 존 웨슬리의 사회적 성결에 기초한 다는 것을 우리 성결인은 잊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우리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어느 가난한 과부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전부를 바쳤던 것처럼 경제 위기의 찬바람 속에도 이웃을 생각하는 온정이 얼어붙지 않았음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몸소 행함으로 나타내자.  

한국구세군 자선냄비는 지난 90년 간 세상의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하며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했다. 이런 ‘빨간 냄비의 기적’을 만든 수많은 작은 손길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춥지 않다. 올해도 자선냄비 종소리로 이웃 간 온정을 전해 모두가 따뜻한 세상을 이룩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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