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범 장로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한해도 어느덧 황혼이 짙게 드리운다. 어느 해 여름보다 무덥고 힘들었던 찜통더위, 그러는 가운데 들녘은 어느 새 황금빛으로 물들고 사방은 아름다운 병풍으로 물들인 고운 단풍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에 분주하기는 매한가지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 속에서 우리네 삶의 여정은 이어져 갔다. 때로는 울고,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위해서는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앞만 보고 쉼 없이 경주하여 오지 않았나’라는 마음이 들어 부끄럽기 한이 없다. 만약 내가 나의 이익만을 위하여 내 멋대로 행동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이익만을 위하여 자기 멋대로 행동할 것이 뻔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의 일을 할 때 그것이 남에게 이익을 주게 될 것인가 해로움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남의 인격을 존중해주면 그도 나의 인격을 존중해줄 것이다. 우리사회는 서로 도우며 도움을 받고 사는 더불어 사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남을 위하는 마음, 남을 존중하는 마음, 여기에 사람들은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함께 사는 사람들 간에 신뢰가 생기게 된다. 그래야만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이것이 배려요, 함께 살아가는 윤리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불현 듯 뇌리를 스치곤 한다. 바다 속 한구석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었다. 모두 빨강색 물고기였는데 한 마리만 검정색 물고기였다고 한다. 그 물고기는 헤엄이 무척 빨라 달리기 시합에서 늘 일등이었고 큰 물고기의 공격일 경우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산호 속으로 빨리 숨을 수 있었으니 이름이  ‘으뜸헤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납고 굶주린 다랭이의 공격을 받아 같이 놀던 빨강 물고기들은 모두 잡아먹히고 으뜸헤엄이만 도망치게 되었다. 그는 깊은 바다 속으로 헤엄쳐 갔다. 두렵고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그러다가 그는 바위 뒤에 숨어사는 작은 물고기 떼를 보았다. 잡아먹힌 옛 친구들과 같은 무리였다. 그는 기뻐서 빨강 물고기 떼에게 같이 나가서 세상 구경을 가자고 했으나 그들은 잡아먹힐 것이 두려워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평생을 여기서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라고 으뜸 헤엄이는 생각하고 소리쳤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우리는 바다에서 가장 큰 물고기 모양을 이루어 모두 함께 헤엄을 치는 거야.” 그는 빨강 물고기에게 서로 바짝 붙어 각자 자기자리를 지키며 헤엄치는 법을 가르쳤다. 이제 그들이 거대한 한 마리 물고기 모양을 이루어 헤엄칠 수 있게 되자 으뜸 헤엄이는 말했다.

“내가 눈 역할을 할테니 따라와.” 이리하여 그들은 시원한 아침 물속에서 또한 낮의 햇살 아래서 헤엄을 치며 다랭이 등을 쫓을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예화지만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개성을 인정해 주면서 제 위치를 찾게 하고 서로 격려하며 어우러질 때 큰 고기 모양을 한 작은 물고기 떼와 같이 큰 힘을 발휘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해를 접으면서 자신에게는 물론, 가족과 이웃에게 지인과 성도들에게 얼마나 격려해 주었으며 얼마나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었는지 그리고 함께 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남을 배려할 수 없으며 감사 또한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전광 목사님의 평생감사라는 메시지가 가슴을 저미어 온다.

감사로 한해를 갈무리하자. 며칠 남지 않은 한해의 끝자락에 부끄러움 속에 조용히 나의 자화상을 뒤돌아본다. 아울러 ‘내년에는 더 좋은 일만 있겠지’라는 작은 바램으로 또 하루를 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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