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해범 중 살해범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까지 세계에 존재하던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지식’) 우리 기독교인들이 반기독교적 선언으로 눈을 흘기는 이 말을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유럽 지성사를 바꾼 말”로 평가하였다.

▨… 목사인 아버지와 목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니체는 매우 경건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성결 구절을 너무도 감동적으로 낭독해 ‘꼬마 목사’로 불리우기도 했었다. 그가 25세에 바젤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거두였던 리츨(Albrecht Ritschl)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니체가 반기독교 선언의 선봉에 선 것은 그의 질병이 준 영향 탓일까. 아니면, 엉뚱하게도 우리가 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데에 기독교의 사명이 있음을 강조한 리츨신학의 영향 탓인지 당시의 교회를 향한 니체의 비판은 가혹하다 못해 섬뜩하다. “기독교인은 예수가 명령한 행위를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이 나온 이유는, 예수가 요구한 행위를 널리 천명할 용기와 의지가 교회에 없었기 때문이다”(F. 니체, ‘권력에의 의지’) 

▨… 그의 말을 미친 자의 넋두리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가슴을 찌르는 상처가 너무 아프지 않은가. 아니, 아픔마저 느끼지 못할 만큼 우리는 뻔뻔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클라게스(Ludwig Klages)는 ‘니체의 심리학적 성과’에 이런 글을 남겼다. “철저할 만큼 단호하고 대범하게 신을 부정한 이 사람만큼 내면에서는 지쳐 쓰러질 정도로 기독교의 문제를 고민한 자가 독일인 중에 또 누가 있었겠는가? ···일찍이 니체만큼 열정적이며 금욕적이고 또한 절망적이었던 기독교도가 또 어디 있었겠는가?” 묻고 싶다. 한국 기독교도 가운데는 있었는지를···.

▨… 하나님을 향해 칼을 드는 자는 어쩌면 니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을 이용하거나 짓밟고 있는 우리 자신이 아닌지 묻는다면 제정신이냐고 화내는 이가 있을까. 한국성결신문이 보도한 교계 5대 뉴스를 보면서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죽이려는 칼날을 감추고 있지 않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누군가는 비웃을까. 바위로 제 발등찍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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