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규 교수
지금껏 한국교회는 교인 수 증가와 예배당 건축 등 양적 성장에 몰입해왔다. 예배당 크기가 목회 성공의 기준이고 성도 수가 부흥의 척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겉으로 보이는 요소들보다 본질적인 차원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성공철학을 따르는 세미나가 아닌 작지만 알찬 교회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장’ 보다는 ‘동반’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역친화적 교회, 선행과 섬김의 봉사 등이 강조되고 있다.

수십 년 전에 같은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며칠 전에 만났다. 이제는 모두 나이가 들어 어엿한 직장인, 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 중 몇 사람은 교회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나는 기독교가 싫다.” “나는 교회가 싫다.”

오늘날 사회에는 반 기독교적 정서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같이 과학과 기술이 첨단을 달리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종교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1960년~1980년대만 해도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종교였다.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거리를 걷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소개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예전에는 전도하면 결신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전문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과거에는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높았지만 오늘날에는 복음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졌다.

이런 때에 우리는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가? 2019년 새해를 맞아 주목해야 할 네 가지 목회 트렌드를 살펴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자.

첫째, 본질을 추구하는 목회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양적인 사고가 목회를 지배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질적인 사고가 중시되고 있다. 대형 교회, 좀 더 많은 교인수가 목회 성공의 지표로 간주되던 때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겉으로 보이는 요소들보다도 본질적인 차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런 경향은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있는 목회자들이 성공 철학을 버리고 성경이 말하는 본래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교회 사이즈가 작더라도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참된 목회라고 인식하며, 여기저기에서 성공했다는 목회자들의 방법론 중심적인 목회 세미나를 더이상 쫓아다니지 않는다. 오히려 작지만 알찬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론을 열심히 공부한다.

근대주의의 중심 어휘인 ‘효율성’ 보다 ‘진정성’을 더 중시한다.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저항성이 강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에 목회자들의 입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선교적 교회’가 이런 경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다움’의 핵심적인 가치로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곧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공유된 의식을 가지고 서로의 삶을 돌보고 나누는 공동체를 가리킨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 외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개체 교회의 무한한 성장보다 개척 사역을 통한 네트워크 식 성장을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교회를 유기체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립 개척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둘째, 지역친화적 교회가 빠르게 목회적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추상적인 우주적 교회, 보편적 교회의 관념이 강조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움직이는 가시적 교회, 특히 지역사회 안에 붙박고 있는 지역교회야말로 진정한 교회라는 인식이 뚜렷하게 부상하고 있다. 이렇게 진정한 교회가 ‘지역교회’라면 교회는 당연히 지역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이런 경향은 선교에 대한 목회자와 성도들의 인식을 크게 바꿔 놓았다. 과거에는 선교를 생각할 때 무조건 해외선교만을 연상하곤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선교가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를 향한 선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사도행전 1장 8절을 봐도 선교의 네 영역 가운데 첫 번째 영역이 지역사회를 가리키는 예루살렘이었다. 교회는 제일 먼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 안에서 인정받고 지역주민들과 원활히 소통하는 가운데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각 지역교회마다 자신의 지역사회의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가운데서 긍정적인 존재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직접적인 구두 복음 전도보다는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선행과 섬김의 봉사가 더 중요한 선교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직접적인 구두 복음 전도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때, 다시 말해서 복음의 추수기에는 구두 복음 전도가 일차적인 선교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낮고 저항성이 높은 때에는 직접적인 복음 전도보다 먼저 그들의 딱딱한(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기경할 수 있는 ‘착한 행실’이 더 중요하게 요청된다.

단번에 승부를 내려고 하는 전도 방식보다는 삶의 여정 속에서 다양한 교제와 섬김을 통해 관계를 형성한 뒤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적절한 때에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다. 이런 경향은 지역사회를 향한 선교와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지역 사회 봉사로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육신적인 자세와 소통을 통한 열린 리더십이 모든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는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과거에는 닫힌 리더십이 통했다. 위와 아래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위계질서, 한 사람의 탁월한 능력만 강조하는 권력 구조, 명쾌하게 정답을 알려주는 지식 위주의 가르침이 그 시대 리더십의 화두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예수님처럼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낮은 자리로 내려와 소통하는 자세가 더 중요해졌다.

지도자가 부족해도 주변에서 함께 하는 평신도들의 능력을 존중하고 그들의 은사와 열정을 자신의 리더십으로 포용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지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지식보다는 공감과 배려를 통한 감성적 교감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이런 덕목들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역 사회와 교감할 때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모든 의사소통에 이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화적 경향성이 이런 목회 원리들을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

정리해 보자. 오늘날에 나타나고 있는 네 가지 목회 트렌드에 관해 언급했는데, 이 네 가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적 관점에서 오늘에 진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를 원하는 목회자라면 이 네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가 경제적 양극화일 것이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교계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두 부류 곧 본질을 추구하는 진정한 교회들과 구태의연하게 과거의 제도와 전통에 얽매여 점차 무기력해지는 교회들로 확연하게 구분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본질을 추구하는 진정한 교회들이 적지만 믿음으로 실험을 감행하고 도전하는 교회들이 늘어날수록 한국 교회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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