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기독교 중심의 비폭력 혁명…그 정신 계승해야

▲100년 전 3월 1일, 기독교인은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일제의 총칼에도 민족의 자주와 평화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독립은 됐지만 전쟁과 분단으로 이 땅에 완전한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100년 전 함성을 외쳐야 합니다. 가시밭에 피어난 백합화서처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평화를 노래하고 사랑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타오르는 태양처럼 성결의 복음으로 민족의 화해의 빛을 밝히는 3.1운동 100년의 해를 함께 만들어 가자.
“대한독립만세! 하느님이여 도우쇼셔”

1919년 3.1운동 당시 한 일간지에 보도된 기사문 중 하나이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은 3개월 간 전국에서 약 1,500회 열려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특히 3.1운동은 비폭력 평화시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외신들은 조선의 이런 시위를 ‘조선의 맨손 혁명’으로 다루며 3.1운동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또 3.1운동은 만세운동을 넘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 공화정’ 개념도 제시했다. 박창훈 교수(서울신대 교회사)는 “3.1운동 전까지 ‘국가는 왕이 중심’이라는 왕정개념의 국가관이 강했다면 3.1운동 이후엔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정’이 새로운 국가개념으로 제시되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3.1운동의 준비과정부터 전개, 이후 계승까지의 전 과정을 주도하며 비폭력과 평화 시위로 만세운동을 실천했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는 3.1운동을 준비, 전개, 계승단계로 구분하고 “준비와 계승 단계의 대부분을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독립운동이 일본과 상해로 연결되는데 당시 외국에서의 독립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주도했으며 조선에서의 실제적인 준비도 기독교인들의 손을 거쳤다.

실제로 독립선언서에도 기독교의 비폭력 저항과 평화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독립선언서 작성자들은 독립, 자유, 희망, 자주권 의식을 강조했으며 일본을 저주하지 않고 평화적 해결의 원천을 기독교 사상에서 찾았다. 이만열 교수(전 숙명여대)는 “성서를 통해 정의와 자유, 독립과 평등의 이념을 체득한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신앙심으로 민족의식을 강화시켰고 민족의식은 신앙심을 더 심화시켰다”고 밝혔다. 

또 당시 기독교인들의 89%가 참여할 정도로 기독교는 만세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전국 지방단위로 조직돼 있는 교회와 기독교학교가 지역 독립운동의 거점역할을 감당했기에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340곳에서 중요한 만세시위가 있었는데 그중 기독교가 주도한 곳은 78곳이었고, 천도교와 기독교가 연합한 곳이 42곳이었다.

3.1운동 당일에도 만세운동이 9곳에서 일어났는데 7곳을 기독교 인사가 주도할 정도로 기독교인의 비중은 높았다. 3.1운동으로 체포된 기독교인이 전체 투옥자 중 20%를 차지할 정도였다. 당시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 중 1.5%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이후 상해에 설립된 임시정부에도 기독교인들이 요직을 맡으며 3.1운동 정신을 이어갔다.

기독교인들의 만세운동은 당시 신문에서도 자세히 보도되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민단체인 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 1919년 3월 13일자에는 대한독립 선언이라는 기사에서 ‘평양예수교도 1,500명이 독립운동에 나섰다고 했으며 이 신문의 같은 면에는 일제가 신학생을 잡아 나무 십자가에 결박했다는 기사도 있다.

성결교회도 3.1운동의 거대한 혁명에 기꺼이 동참하며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경성신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철원, 밀양, 부산, 천안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주한 외국인 선교사들은 조선에서의 상황을 해외에 알리며 조선에 대한 관심을 요청했다. 일제와의 간담회에서 일본정부의 만행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청한 것도 선교사들이었다. 기독교인들에 의해 시작된 3.1운동은 비폭력 시위로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담았으며 대한민국의 건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 3.1운동의 정신을 기억하고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3.1운동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와 미래에 우리가 구현해야 할 또 하나의 역사이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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