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여부 판결을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낙태 전면 금지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독교단체는 인권위의 입장에 대해 태아의 생명보다 여성의 행복권만 지나치게 보호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기독교유권자연합과 낙태반대운동연합 등 교계와 시민단체는 “태중에 있는 생명 역시 어떤 상황에서라도 보호해야 한다”며 ‘낙태법 유지’를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쟁점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 생명권의 대립이다. 낙태죄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낙태에 대한 국민의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그런데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특정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되묻게 된다.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하기에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면 스스로 생사를 결정할 수 없는 태아의 생명권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국가인권위법 제1조는 “개인이 갖고 있는 불가침의 기본권을 보호·향상하고 인간의 존엄·가치를 구현한다”고 설립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인간의 가장 큰 기본권과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 인권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인간의 생명보다 귀중할 수는 없다. 여성의 행복추구권·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같은 위치에 놓고 보려는 자체가 잘못이다.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배 속에 있는 태아야말로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약자 중의 약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약자를 여성이 해칠 수 있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을 국가기관, 그것도 이를 막아야 할 인권위가 나서서 부추기고 있으니 인권의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권위 논리대로라면 개인의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위해 국가가 앞장서 안락사를 허용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그런데 태아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는 인권위가 사형제 폐지에는 앞장서고 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사형제 폐지를 약속하는 내용의 국제규약에 가입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인권위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는 배 속에 있든 똑같은 생명이다.

종교적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철학적, 의·과학적 측면에서도 태아는 하나의 인간 존재로 인정된다. 낙태는 자기방어의 수단이 전혀 없는 가장 미약한 인간 생명의 존재를 죽이는 행위다. 여성이 어떤 결정권, 어떤 자유를 주장해도 그것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될 순 없다. 말 못하는 타인의 권리가 쉽사리 무너지면 언젠가 내 권리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권위가 헌재에 의견을 제출한 것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사실상 사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인권위 권고에 법적 강제력은 없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기관의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랬더라도 생명을 경시하라는 권고까지 수용해선 안 된다. 생명을 합법적으로 파괴하자는 주장은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를 국가가 방치는 행위이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에도 낙태 만연 우려와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비중을 둬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음 달 예정된 낙태죄 위헌 여부 판결에서도 헌재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합법적 ‘태아 살인’을 막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생명의식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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